"허투루 연기하지 않았다"…이준익X설경구X변요한 '자산어보' [종합]

입력 2021-02-25 18:03   수정 2021-02-25 18:07


영화 '사도', '동주', '박열' 등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해 온 이준익 감독이 이번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을 주목했다. 영화 '자산어보'를 통해서다.

'자산어보'는 흑산도로 유배된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5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이준익 감독은 "정약용의 형이 흑산도에서 있으면서 해양생물을 기록한 어류학서가 '자산어보'"라고 설명했다.

그는 5년 전 동학과 서학에 고나심을 가지다 정약전이란 인물에 소위 '꽂혔다'고 했다. 이 감독은 "그 시대에 가진 개인의 근대성을 '자산어보'란 책을 통해 영화로 담으면 재밌겠구나, 내가 보고 싶어서 찍었다"고 했다.

'동주'에 이어 또 다시 흑백에 도전한 이 감독은 "'동주'로 큰 자신감이 생겼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감독은 "'동주'와 '자산어보'는 정반대의 흑백이다. 전자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공기에서 흑이 더 크다. 후자는 유배 온 정약전의 새로운 세상이며 흑보다 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어렸을 때 서부영화를 흑백으로 봤다. 잔상이 너무 강렬하다. 1800년대 미국의 근본이 됐던 이야기다. 우리 나라의 1800년대 시대를 흑백으로 보면 어떨까, 많이 다르지? 우리 것이 더 좋아라는 약간의 호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설경구가 흑산도로 유배된 후 바다 생물에 눈을 뜬 학자 정약전 역을 맡아 첫 사극에 도전하게 됐다.

그는 "정약전이라는 선생님의 이름을 배역 이름으로 쓰기가 부담스러웠다. 반면 또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말이 안됐다. 털끝 만큼이라도 따라가자는 마음까진 갖지 못했고, 섬에 들어가 이야기에 섞이도록 했다"고 했다.

정약전에 대해 설경구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지만 실천이 안됐던 인물이 흑산도에 들어가 민초들에 의해 실천을 하게 된거라고 생각한다. 튀지 않고 뭍혀서 가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준익 감독은 설경구 캐스팅에 대해 "다시 함께하게 되어 큰 행복이다. 본인이 책 달라고 운을 떼길래 잘 됐다며 줬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10년을 같은 방을 썼었다. 설경구가 분장을 하고 나오는데 할아버지를 만난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정약전, 설경구, 내 할아버지가 일치된 지점이 감동이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설경구의 첫 사극이다. "제안을 받았는데 용기가 안 나서 다음에 하자고 했었다. 나이 들어서 이준익 감독과 처음 사극을 하니까, 다행이다 싶었다. 흑백이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한번의 결정으로 여러가지를 얻은 느낌이다."

변요한은 흑산도를 벗어나기 위해 글 공부를 하는 어부 창대 역을 맡았다. 이 감독은 "동물적인 에너지의 결정체"라며 "현장에서 단 1초도 세지 않고 발산해 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다"고 인가했다.

변요한은 "'자산어보' 서문에 있는 한줄로 감독님이 입체적 인물을 만들어 주셨다. 사투리를 구사하고 고기를 나누는 법도 알아야 했다. 준비하다보니 어느순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창대의 마음을 알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창대를 통해 시대를 어떤 식으로 바라볼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변요한은 "설경구, 많은 배우들과 호흡을 하며 모든 걸 다 놔버리고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때 시대를 바라보는 창대의 눈이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준익 감독은 "굉장히 겸손하게 말한 것"이라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그는 "시나리오에 캐릭터적으로 짜증이 많고, 기능적으로 반응하는 게 대부분이다. 변요한이 '이렇게 짜증 내는 건 아닌거 같다'며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설명을 자세하게 하지 않고 말을 꾸며내지 않는다. 몸으로 그걸 보여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약전은 기록에 있기에 함부로 만들 수 없다. 반면 창대라는 인물은 이름 몇개 밖에 없다. 스토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와중에 변요한이 창대란 인물을 표현한 방식은,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 채워냈다"고 극찬했다.

변요한은 촬영장에서 매일 울었다고 했다. 글이 좋았다는 이유에서다.

'자산어보'의 매력에 대해 변요한은 "흑백이라서 선, 면, 형태가 뚜렷이 드러나고 조금이라도 허투루 연기하거나 하면 다 걸리더라"라고 털어놨다.

그는 "그 인물의 캐릭터의 본질과 변요한의 본질이 충돌하더라도 욕심 부리지 않고 가야했다. 그게 고스란히 묻어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이어 저희 영화의 매력은 여운이다. 계속 생각나는, 또 보고싶은 그런 여운"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익 감독은 "설경구를 잘생겼다고 생각해본적 없다. 매력적인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상투, 한복을 입으니 잘 생겨 보이더라. 설경구 얼굴만 보일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설경구는 변요한에 대해 "가진게 많은 배우다. 동물적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부분도 있고 섬세하면서 따뜻한 면도 있다. 사람이 좋다. 지금까지 그런데 조금 더 지켜봐야 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준익 감독은 "정약전의 가치관에 관심을 가졌다. 포기하지 않고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어린 창대를 만났는데, 나이차보다 신분의 차가 더 컸다. 엄청난 간격을 메우는 한 지점, 가치를 위해 끝까지 가다보니 친구가 되고 우정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라는 명대사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자산어보'는 오는 3월 31일 개봉 예정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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