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의 주체성을 전하는 학문이 ‘구술사’예요” 윤택림 한국구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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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2-26 16:42   수정 2021-02-26 16:42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의 주체성을 전하는 학문이 ‘구술사’예요” 윤택림 한국구술사연구소장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서채운 대학생 기자] 구술사는 말로 쓰는 역사다. 문서로 남기기 어려운 이야기들, 역사의 기록 과정에서 소외된 이야기들이 구술사의 주된 대상이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는 사람을 구술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사람을 구술 채록자라 부른다.

한국 사회에서 구술사는 1980년대 후반 사회 정치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제주 4·3 사건, 일본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을 수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윤택림 한국구술사연구소 소장은 구술사를 처음으로 경험한 박사 시절부터 현재까지 구술사 연구와 발전에 힘쓰고 있다. 윤 소장은 2008년 연구소가 개소한 이래로 강연을 통해 수많은 구술채록자들의 성장에 도움을 준 인물이다.


△윤택림 소장(촬영=서채운)

윤택림 한국 구술사 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 인류학 석사, 박사
前 한국구술사학회 회장
現 한국구술사연구소 소장
주요 저서: 인류학자의 과거여행: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2003. 역사비평사), 역사와 문화연구를 위한 질적 연구 방법론(2013 개정. 아르케), 구술로 쓰는 역사: 미수복경기도민의 분단과 이산의 삶(2016. 아르케), 역사와 기록연구를 위한 구술사 연구 방법론(2019. 아르케)

구술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 때 인류학을 전공했다. 처음부터 구술사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충남 예산의 한 마을을 방문했다. 좌익이 우세했던 마을에 가서 현지조사를 하고 마을사를 재구성하려 했는데, 그 마을에 문헌 자료가 별로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기록, 문서를 다 없애기도 했다. 마을의 면사무소나 군청에서도 주기적으로 공공 기록물을 중앙정부에 보냈고, 중앙정부는 그 자료들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폐기했다. 그래서 사용한 방법이 구술사 인터뷰였다. 결과적으로 그 마을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그 마을 사람들의 생애사, 가족사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구술사를 접하게 되었다.”

연구소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구술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 열었다. 2000년대부터 구술 채록 기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당시 구술 채록 기관과 프로젝트는 늘어나는데 공부하고 교육받을 장소나 교육을 지도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연구소를 차려서 도와주고, 교육하고 싶어 만들었다. 한국구술사연구소는 2008년에 개소했다. 초기에는 오프라인 강좌로 대학원 코스처럼 채록자 과정을 운영했다. 주로 강의에 오는 사람들은 석사,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지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답답할 것 같다
“그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구술사 기관들과 프로젝트, 아카이브도 많이 축적이 되어 있지만 교육의 장소가 부족하다. 연구자는 있는데 학과나 교수가 없다. 예전보다는 환경이 좋아졌지만, 구술사 교육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미국은 구술사를 배울 수 있는 대학원 코스가 있다. 다행히 요새 한국 근현대사 전공하는 사람들 중에 구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이 대학에 가서 구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연구소 홈페이지에 온라인 강의도 있는 것으로 안다
“교육의 장소를 만들었지만, 서울에 있으니 지방의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2017년 정도부터 나의 학문적 관심사를 반영해 온라인 강의를 만들어서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강의를 듣는 순서는 정하지 않았다. 굳이 추천하자면 질적 연구 방법을 들은 후 구술사 연구 방법을 들으면 좋을 것 같다.”


△한국 구술사 연구소 홈페이지 자료.

구술 채록의 전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계는 무엇인가
“당연히 인터뷰다. 인터뷰를 잘 해야 결과물이 잘 나온다.”

‘역사와 문화연구를 위한 질적 연구 방법론’이라는 책을 냈다. 구술사와 질적 연구는 어떤 관계를 가지나
“구술사는 질적 연구 방법 중 하나다. 현지 조사, 참여 관찰, 생애사, 구술사, 문화비평 등이 질적 연구이다. 질적 연구는 연구자가 연구의 도구가 되어 그 대상들과 상호 작용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구술사 수집은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좋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현지 조사, 참여관찰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터뷰 대상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구술자의 삶의 맥락을 알아야 그 구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시간과 노력, 비용 때문에 인터뷰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나은 인터뷰를 위해서는 현지 조사와 같은 질적 연구를 충실히 사용해야 한다.”

구술 채록자가 가져야 하는 자질은 무엇인가
“구술사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듣는 것과 구술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형 인터뷰와 구술사 인터뷰를 혼동한다. 대부분의 기사형 인터뷰나 심층 면접에서는 연구자가 듣고자 하는 것을 중심으로 인터뷰한다. 하지만 구술사 인터뷰는 구술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구술사는 구술자가 경험한 사건, 살아온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드러내는 것이다. 듣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윤택림 소장의 저서. 왼쪽부터 구술사 연구 방법론, 질적 연구 방법론.

어떻게 하면 잘 듣는 태도를 가질 수 있는가
“우선 자기의 선입관, 생각, 가치관, 정치적 입장을 보류해야 한다. 구술사는 구술자의 경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구술사 수집 과정에서 연구자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구술자가 어떤 경험과 생각을 하였는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구술자의 입장에서 사건과 생각을 해석, 분석을 하라는 것이다. 구술사는 질적 연구와 마찬가지로 해석적 연구를 하는 것이다. 연구자의 정치적 입장이나 선입관을 주장하면 성공적인 인터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술자와의 신뢰관계는 어떻게 쌓을 수 있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 때문에 구술자에게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구술자에게 친절하게 연구 목적, 연구자가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이유, 결과물이 어떤 식으로 쓰일 것인지 자세하게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명함이나 공식 서류도 있으면 좋다. 인터뷰가 잘 되었다는 것은 신뢰감을 주었고, 진정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잘 된 것이다. 소개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소개자가 연구자를 대신해 신뢰감을 잘 줄 수 있도록 중간에서 잘 소개해야 한다.”

이 외에 구술 채록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가장 윤리적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구술자 신원 보호다. 개인정보도 마찬가지다. 구술자가 원하지 않는 것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연구의 목적, 진행 과정, 결과물의 사용 방향, 연구 과정에서 구술자에게 어떠한 해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민감한 문제일수록 더 확실한 신원 보호가 필요하다. 때문에 모든 구술사 수집에는 구술 자료의 이용 등에 관한 동의서를 사용한다. 개인 정보 공개에 대한 동의서도 필요하다.”


△(사진 3)국사편찬위원회의 구술 자료의 이용 등에 관한 동의서(출처=구술사 연구 방법론)

가장 기억에 남은 연구는 무엇인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했던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 현지조사였고. 그 연구로 인해 구술사가 된 것이니까. 그 연구가 쉽지는 않았다. 당시 아직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했고 또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녹음도 하기 어려웠다. 외부인이 와서 녹음을 하면 간첩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주요 제보자, 구술자 외에는 녹음을 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받아쓰기로 기록했다. 지금은 다시 못 할 것 같다. (웃음) 그때는 박사 학위 논문이라 가능했던 것이다.”

연구 분야 중 여성 구술사가 있다. 여성 구술사를 수집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여성 구술사는 구술사 분야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여성 구술사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증언에서 시작한다. 초기에는 피해자나 무당과 같은 특정 여성 직업군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2000년대부터는 평범한 여성들의 구술 생애사 연구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체적인 삶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이를 분석한다. 여성학자들이 여성 구술 생애사에 대해 호감을 가진 이유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서술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구술 생애사는 ‘넌 여자야, 여자라서 이렇게 해야 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삶의 주체성을 가져다준다.”

전문가가 아닌 지역민, 일반인이 지역의 구술 채록사로 활동하는 것은 어떻게 평가하나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구술사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민들이 구술사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의 역사를 수집하고, 역사 쓰기 주체로 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재 각 지역에는 대단히 고학력인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능력이 있지만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지역 내에서 이러한 지역민들을 훈련시켜 구술 채록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구술사 연구를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구술사이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을 대상으로 대면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실제로 구술 채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구술자는 마스크를 벗고, 면담자는 마스크를 쓰고 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진행했다. 표정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상호작용 측면에서 좋은데 마스크 때문에 어려웠다. 대면적인 접촉을 통해 신뢰감을 주는 것도 중요한데 그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화상 인터뷰도 이용하긴 한다. 그러나 한 번도 보지 않고 그렇게 인터뷰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다. 화상으로 인터뷰하려면 어느 정도 예비 면담이 이루어지고 합의가 된 상태에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조금 나이가 많은 분들은 화상 인터뷰도 쉽지 않다. 50대 이하의 사람들은 인터넷 환경과 전자기기에 익숙하니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나중에는 화상 인터뷰도 가능해질 것 같으나 면담자와 구술자의 관계, 신뢰감 형성 정도도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구술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호기심이나 지적인 관심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 재단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역사적인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모든 삶에 대한 애정, 연민, 그리고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누구나 구술채록사로 활동할 수 있다는 인식은 위험하다. 이런 인식은 사전 준비 없이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인터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구술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최대한 많이 준비하고 제대로 공부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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