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VS 신세계의 42년 라이벌전(戰)…이대호·추신수 대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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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3-01 09:30   수정 2021-03-01 09:37

롯데 VS 신세계의 42년 라이벌전(戰)…이대호·추신수 대결로


롯데와 신세계가 4월3일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맞붙는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 공교롭다. 1979년 롯데쇼핑 창립 이래 42년 간 한국 유통산업의 ‘맞수’로 활약해 온 두 기업이 이번엔 야구로 자웅을 겨룬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메이저리거'인 추신수를 영입하면서 관전 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이대호와의 대결이 성사돼서다. 추신수와 이대호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30년 절친이다.
42년 전 이명희 VS 신영자의 재현
‘추신수 VS 이대호’의 대결은 42년 전 ‘이명희 VS 신영자’의 데자뷔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은 이화여대 동문으로 같은 해(1965년) 졸업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막내 딸인 이명희 회장은 12년 간 전업 주부로 살다 “백화점 사업부를 맡아서 운영해보라”는 부친의 설득 끝에 1979년 신세계 영업담당 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롯데그룹이 롯데쇼핑센터라는 이름으로 서울 을지로에 롯데백화점 본점을 열었다. 신격호 롯데 창업자의 유일한 적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은 당시 롯데쇼핑 설립에 참여해 롯데백화점을 '국내 최고'의 반열에 올려 놓는데 일조했다.

유통업 진출은 신세계가 한 발 앞섰다. 신세계는 삼성그룹에 속해있던 시절인 1963년, 국내 최초 백화점인 동화백화점을 인수해 유통분야에 첫 발을 딛었다. 이후 1967년 국내 최초로 바겐세일을 실시하고, 1969년 국내 최초로 신용 카드제를 도입하는 등 국내 유통산업 초창기에 다양한 족적을 남겼다.


1979년 롯데그룹이 유통업에 진출하면서 양 그룹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됐다. 당시 신격호 회장은 롯데호텔을 먼저 시작했는데 바로 옆 부지에 관광객을 끌어들일 도심형 백화점을 짓겠다고 정부를 설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복합 쇼핑센터의 원조격이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1997년 단일 점포로는 최초로 연 매출(총거래액) 1조원을 넘어서며 명실공히 롯데쇼핑을 국내 유통업 1위 기업에 올려놨다. 유통업 진출로 롯데그룹은 제과 중심에서 서비스 분야로 보폭을 넓혔고, 여기에서 축적한 엄청난 현금이 '신동빈 체제'에서 화학, 금융 등 신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

1980년대 양 그룹의 대결은 후발주자인 롯데의 완승이라고 할 만했다. 신세계백화점이 1984년 2호점인 영등포점, 1988년 3호점인 미아점을 선보이며 외형을 확장했지만 롯데가 1988년 두번째 백화점 부지로 잠실을 낙점하면서 판세가 기울었다. 신격호 회장은 재계에서도 땅의 가치를 잘 알아보기로 유명했다. 일본에서 수차례 사업 실패 끝에 재기에 성공한 그는 한국보다 20여 년 앞선 일본 도심의 발전 과정을 지켜본 터였다. 그는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 놓고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곳들을 헐값에 사들이곤 했다. 2호점을 잠실로 택한 건 그의 선구안이 얼마나 과감했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신세계는 강남점을 포함해 대부분의 점포에 세(稅)를 내고 입주했었다.
백화점 1위 롯데, 마트 1위 이마트
신세계는 1993년 서울 도봉구 창동에 국내 첫 대형 할인점을 선보이면서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만 해도 국내 유통은 백화점과 재래시장이 양대 축이었다. 이명희 회장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직감했다. 미국 월마트처럼 한 공간에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는 대형 할인점이 한국에서도 통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마트는 1996년 진출한 까르푸, 1998년 1호점을 낸 월마트의 공세를 막아내며 한국형 할인점이라는 새로운 유통업을 정착시켰다. 당시 이마트 임원들 사이에선 "동해에 지어도 1년이면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는 말이 회자됐다고 한다. 1998년 외환위기는 이마트 도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신세계그룹은 프라이스클럽과 제휴을 맺고 매장 3곳(서울, 대전, 대구)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마트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때였다. 이명희 회장과 전문 경영인이던 구학서 대표(1999년 취임)는 프라이스클럽 매장을 한국 코스트코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약 1억달러에 달하는 매각 대금은 이마트 확장에 투자했다. 1998년 롯데마트 설립으로 뒤늦게 대형 할인점 경쟁에 뛰어든 롯데는 지금까지도 이마트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지는 롯데와 신세계의 대결은 '맞수' 전문 경영인도 탄생시켰다. ‘구학서 VS 이인원’ 대결 구도다.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재무통인 구 사장은 1996년 신세계로 옮겼다. 1999년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한 이래 2014년 11월 신세계 회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하기까지 무려 15년 간 신세계를 이끌었다.

구 회장이 직장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까지 오를 수 있던 데엔 '이인원'이라는 경쟁자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게 중론이다. 고(故) 이인원 부회장은 1997년 롯데쇼핑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2016년 8월까지 롯데 유통사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유통업계가 평가하는 두 전문경영인은 '닮은 꼴'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널 정도로 꼼꼼하고, 숫자에 밝은 경영 스타일이 닮았다는 것이다.

2000년대는 유통 분야에서 ‘신동빈 VS 정용진’의 구도가 서서히 만들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 회장은 1997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 후 1999년 코리아세븐 대표, 2000년 롯데닷컴 대표 등을 거쳐 2011년 매출 100조원을 바라보는 재계 5위 그룹의 회장에 취임했다. 1995년 신세계그룹에 입사한 정용진 부회장은 2006년 부회장직에 오르면서 이마트 부문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부산에 이어 인천까지, 롯데 '침공' 나선 신세계
단순화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롯데와 신세계의 대결은 부지의 선점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오프라인 플랫폼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중심지이자, 수많은 물자와 서비스가 관통하는 플랫폼이다.

신세계가 인천을 연고지로 둔 SK와이번스를 인수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나 공교롭다. 유통가(家)의 관점에서 인천은 롯데의 텃밭이나 다름없다.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은 인천 내 유일한 백화점이다. 롯데엔 매출 '빅5' 안에 드는 효자 점포다. 신동빈 회장이 2019년 1월 현장 경영에 재시동을 걸면서 찾은 곳이 인천터미널점이다.

인천터미널점은 1997년부터 신세계가 운영하던 점포였다. 신세계는 강남점조차(현재는 부지인 강남터미널점을 신세계가 매입) 세를 들어서 살 정도여서 인천점 역시 터미널에 세를 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 롯데가 2012년 9월 인천시로부터 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9000억원에 매입하면서 결국 신세계는 2018년 인천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인천 야구단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만큼 송도와 청라 등에 대규모 신세계 단지를 건설할 가능성이 높다. 정 부회장은 청라에 돔 구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송도신도시 내 인천대입구역에 신세계가 갖고 있는 유휴부지에도 백화점 입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와 신세계의 '부지 전쟁'은 2009년 부산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신세계는 부산 해운대구 도심위락시설단지(UEC) 위에 초대형 백화점을 선보였다. '신세계 센텀시티'가 주인공으로 본점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세계 최대백화점'이라는 기네스 인증까지 받았다. 불과 1년 전 센텀시티점을 냈던 롯데로선 신세계의 도전이 뼈아플 수 밖에 없었다. 해당 부지는 원래 롯데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땅이다. 1994년 입찰 때 현대백화점이 막판에 기권하면서 롯데의 독차지가 예상됐으나, 신세계가 입찰 마감 5분 전에 1330억3100만원을 써내면서 롯데를 간발의 차로 앞섰다.

당시 롯데는 '맏형의 미덕'을 보여줬다.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신세계가 맞은편에 백화점을 내자 건물 중앙에 “신세계 센텀시티점 오픈을 축하합니다. 더불어 부산 시민들의 쇼핑 편익의 수준을 같이 높여 나가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롯데백화점은 명품 화장품브랜드인 C사가 자사 매장에서 철수하자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인근 신세계 백화점 위치를 안내한 일도 있었다. 유통업계 맞수이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일종의 '신사협정'이 유지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신세계의 롯데 '공략'은 그치지 않았다. 2007년에는 롯데의 안방에 신세계가 입점하는 일도 생겼다. 롯데건설이 서울 황학동에 건설하는 ‘롯데캐슬 베네치아’ 단지 내 대형마트 선정 결과 이마트가 입점업체로 선정된 것이다. 해당 건물은 ‘건축물 분양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아 수의계약이나 경쟁 입찰이 아닌 추첨을 통해 입점업체를 가려야했다. 당초 시공사인 롯데건설을 등에 업은 롯데마트의 입점이 유력했으나, 조합 관계자가 제비뽑기로 이마트를 선택하면서 롯데캐슬 내에 이마트가 입점했다.

신세계와 롯데는 2009년 파주에서 다시 한 번 맞붙었다. 파주에 있는 통일동산 내 프리미엄 아울렛 부지를 차지하기 위해 신세계와 롯데가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결국 신세계가 부지를 차지한 것이다. 롯데가 해당 부지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오픈하기 위해 부동산 개발업체인 CIT랜드와 임대차 계약을 했지만, 땅에 대한 공동의 권리를 가진 대림산업이 매각을 추진하면서 CIT랜드가 롯데와의 임대차 계약을 파기하고 신세계와 매매 계약을 맺었다. 이후 신세계는 2011년 3월 경기 북부에 처음으로 교외형 명품 아울렛인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을 오픈했고, 롯데는 이에 질세라 2011년 12월 신세계의 아울렛 매장과 5.6km 떨어진 파주출판단지에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파주점’을 오픈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나란히 신규 백화점 출점 경쟁
롯데와 신세계는 올해 각각 7년, 5년만에 신규 백화점을 개점한다. 롯데는 수도권 최대 규모로 동탄점을, 신세계는 대전 엑스포점을 열 계획이다. 강남점에 뺏긴 '1등 백화점'이라는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롯데백화점은 대대적인 을지로 본점 리뉴얼도 추진 중이다. 3월 1일부터 시작해 상품군별로 내년 하반기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쿠팡, 네이버 쇼핑 등 e커머스의 총공세 속에 위축됐던 오프라인 유통업이 롯데, 신세계 두 '맞수'의 대결로 다시 한번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4월3일 인천에서 벌어질 두 그룹의 맞대결에 벌써부터 아드레날린이 샘솟는다.

후일담 하나. 정용진 부회장이 야구단을 인수하면서 본인도 야구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주변 지인들은 '글쎄'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엔씨소프트의 '택진이형' 만큼 야구광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위스키 등 독주를 즐기고, 소싯적엔 모터사이클을 즐겼다고 한다. 신동빈 회장도 야구에 큰 관심을 내비친 적은 별로 없다. 그의 최애 스포츠는 스키다. 동계 스포츠 후원에 애정을 갖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롯데와 신세계의 야구 대결에 관한 또 하나 관전 포인트는 정 부회장이 야구단 이름을 뭘로 지을 것이냐다. 정 부회장이 밝힌 바로는 인천에 딱 어울리는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참고로 신 회장은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 리그팀인 치바 마린즈의 구단주였다. 롯데 오리온스였던 야구단 이름을 치바 롯데 마린즈로 바꾼 이가 신 회장 본인이었다고 한다. 치바는 바다에 면한 일본의 대표적인 해양 도시다. 흥미로운 점은 정 부회장이 고민했다는 야구단 이름 중 하나로 '마린즈'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천 에스에스지(SSG) 마린즈'가 신세계 야구단의 새로운 이름으로 지어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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