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재산권 훼손의 비극적 결말

입력 2021-03-01 16:58   수정 2021-03-02 00:04

조선왕조실록 현종 12년(1671년) 전라감사는 “얼굴이 누렇게 뜬 무리는 죽을 먹여도 구제되지 않아 진휼하는 곳에서 잇따라 죽고 있습니다”고 보고하고 있다. 같은 해 현종개수실록에는 ‘충청감사 이홍연이 자식을 삶아 먹은 사비 순례에 관해 치계하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뿐만 아니라 굶주림에 부모와 자식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한 내용이 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등장하고 있다.

모두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 조선을 휩쓸었던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 관련 기록인데, 당시 조선 인구의 상당수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근 원인을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빙하기(小氷河期) 기상이변과 이로 인한 곡물 작황의 악화다. 당시 조선뿐 아니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전반적으로 비슷한 기상 환경에 노출되며 함께 기근에 시달렸다. 사유지 확립과 생산기술 발전을 통해 식량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농업 생산 확대가 이뤄지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이런 기상변화에 17세기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대기근의 재앙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20세기에도 인구의 상당수를 사망에 이르게 한 대기근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홀로도모르(holodomor)’라고 불리는 구(舊) 소비에트연방 스탈린 치하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다. 평화 시 기근이 거의 사라진 유럽에서, 더욱이 비옥한 흑토 토양의 평야 지대로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는 곡창지역인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참혹한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홀로도모르 사건은 많은 영화로도 제작됐고 여러 기록이 존재하지만 최근 원인과 관련된 흥미로운 분석이 있었다. 경제사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저널 오브 이코노믹 히스토리’에 출간 예정인 나탈리야 나우멘코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기근의 정치경제학: 1933년 우크라이나 기근의 경우’ 논문이 그것이다. 논문에서는 1933년 우크라이나 기근으로 인구 3200만 명 가운데 260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52%가 소비에트 정책에 기인하는 것이고 기상 요인은 8% 내외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1929년부터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실시한 대규모 농업 집산화 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자신의 토지와 생산 도구 및 가축의 사적 소유권을 사실상 훼손당하고 공동농업 형태로 전환하도록 강제됐으며 식료품의 사적 거래를 사실상 금지하는 일종의 배급정책이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농업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며 대기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토지와 생산수단을 공유화해 생산을 증가시켜 사회주의 경제 산업화를 이루겠다는 소비에트 정권의 시도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부농뿐 아니라 자영농도 몰락시켰다. 더 나아가 농산물 생산 체계를 무너뜨리며 대기근과 이로 인한 대규모 아사(餓死)라는 파국적 비극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중국의 마오쩌둥 집권 당시 이뤄진 대약진(大躍進)운동과 이로 인한 기근 및 대규모 아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2005년 경제학 분야 저명 학술지인 ‘저널 오브 폴리티컬 이코노미’에 실린 분석에서는 대약진운동 당시에 많은 사람을 굶어 죽게 한 농업 생산 감소의 61%가 재산권 훼손 등 정책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즉,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나 중국의 대약진운동 당시 발생했던 농업 생산 감소는 기후 등 자연재해가 미친 영향은 크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정책으로 야기된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결국, 사적 재산권과 시장원리 작동을 저해하는 정책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부동산과 조세 정책 등 여러 제안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고려할 수는 있다. 더욱이, 선거를 앞둔 상황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인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각종 정책이 제안되기 쉬운 환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공익적 의도를 가졌어도 제시되는 정책이 국민의 사적 재산권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지 꼼꼼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어떤 화려한 정책적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재산권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면, 많은 역사적 사례는 그것이 가져올 비극적 결말을 이미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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