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눈물 젖은 치킨과 '미닝아웃'

입력 2021-03-02 17:46   수정 2021-03-03 00:13

어린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다”며 떼를 쓰자 형은 난감했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살며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하는 처지였다. 주머니엔 5000원밖에 없었다. 치킨집 몇 군데를 돌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풀이 죽어 걸음을 옮기던 동생은 마지막 치킨집 앞에서 또 칭얼거렸다. 형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형제의 사정을 짐작하고 가게 안으로 데려간 점주는 서둘러 닭을 튀겼다. 평소보다 많은 두 마리 분량이었다. “잘못 주신 것 같다”고 하자 “식으면 맛없다”며 콜라 두 병까지 가져다줬다. 쭈뼛거리며 건네는 5000원도 마다하고 사탕 하나씩을 더 쥐여줬다.

동생은 형 몰래 가끔 치킨집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주인은 공짜 치킨을 줬다. 어느 날 머리가 덥수룩한 걸 보고 미용실로 데려가 이발까지 해줬다. 형은 미안한 마음에 동생을 못 가게 했다. 최근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 너무나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는 프랜차이즈 본사에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해서 알려진 사연의 주인공은 18세 고등학생과 초등생 동생, 치킨 프랜차이즈 ‘철인7호’ 홍대점의 박재휘 사장(31). 박 사장도 매달 적자로 배달대행 등 투잡을 병행하던 중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응원이 쏟아졌다. 잔돈을 기부하고, 돈 봉투를 놓고 가고, 마스크 두 상자를 갖다주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먼 데서 결제했는데 치킨은 안 받아도 된다” “사장님 위해 선결제만 두 번 했다” 등 ‘미닝아웃(meaning·의미+coming out·드러내기)’이 퍼져나갔다. 미닝아웃은 소비를 통해 자기 취향과 신념을 알리며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외에도 선한 이웃들이 많다. 경기 하남에선 엄마가 일 나간 사이 편의점에 간 아이가 먹고 싶은 것들을 골랐다가 돈이 부족한 걸 보고 한 여학생이 값을 대신 치러줬다. 지난달 폭설 땐 서울역 광장 노숙자에게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고 돈까지 건넨 뒤 말없이 사라진 신사도 있었다.

가난한 형제에게 선행을 베푼 치킨집 사장은 “주문 폭주로 품질이 떨어질까 봐 영업을 잠시 중단한다”며 “빨리 재개해 여러분께 보답하겠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월세 두 달치와 식자재 비용 등을 지원했다. 편지를 보낸 학생은 “사장님처럼 어려운 이를 돕는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모두가 코로나의 어둠을 밝히는 봄 햇살 같은 사람들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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