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혁신 사이…엔진 없는 전기차에 선택지 된 '그릴'

입력 2021-03-03 14:55   수정 2021-03-03 14:57


엔진이 사라진 전기차 시대를 맞으면서 완성차 업체에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 사양으로 남았다. 차량 인상을 좌우하던 라디에이터 그릴을 두고 완성차 업체들의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3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라디에이터 그릴을 뗀 전기차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로 힘을 낸다. 연료를 연소시켜 동력을 얻으면서 엔진이 과열되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라디에이터와 그 통풍구 역할을 하는 그릴이 필요하지 않다.

전기차에서 100% 열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연기관차와 같이 큰 라디에이터 그릴을 요구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앤 아이오닉5에는 전면부 범퍼 하단 쪽에 '지능형 공기유동 제어기'가 장착됐다.


그릴은 차량 전면부의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만큼 오랜 기간 내연기관차 전면 디자인의 핵심으로 자리해왔다. 그릴만 바꿔도 차량의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고급스러움을 주기도 하고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때문에 브랜드 디자인의 상징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BMW의 '키드니 그릴'이 대표적이다. 1933년 첫 4륜 구동 차량인 '303'에 최초로 적용됐던 키드니 그릴은 BMW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 디자인이자 BMW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요 요소다.

최근 BMW는 4시리즈에 '수직형 키드니 그릴'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소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키드니 그릴 특유의 느낌은 놓치지 않았다. 제네시스도 브랜드 고유의 날개 형상 엠블럼을 형상화한 '크레스트 그릴'로 제네시스 전 라인업을 완성했다.

초기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플랫폼으로 제작된 탓에 그릴 자리를 부자연스럽게 메꿔 출시됐다. 통풍구 역할을 하지 않는 '가짜 그릴'을 적용하기도 했다. 내연기관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된 코나 전기차(EV)의 그릴 자리는 구멍을 뚫은 듯한 디자인이 자리하고 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그릴 자리를 억지로 채울 필요가 없어졌다. 그 자리를 아예 없애는 등 혁신적인 디자인 설계도 가능해졌다.

그릴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며 완성차 업계도 고민에 빠졌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릴이 갑자기 사라져 어색할 것을 우려하는 브랜드도 있고 이를 노려 과감하게 삭제하는 브랜드도 있다.

아우디는 순수 전기차 e-트론에 내연기관 자동차와 유사한 그릴을 적용해 연속성을 부여했다. 이에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같이 익숙하면서도 오묘하고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평을 받았다.


테슬라 차량과 현대차의 아이오닉 5는 그릴을 과감히 생략해 미래적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아이오닉 5를 두고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미래지향적이고 사이버펑크처럼 보인다"며 "현대차 디자인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고, 전기차 전문매체 일렉트렉은 "과감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사이버펑크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향후 출시될 전기차들은 라디에이터 그릴을 점차 줄이거나 없앨 가능성이 높다. 올해 출시 예정 기아 CV나 벤츠 EQA의 콘셉트카도 그릴 부분이 사라진 형태를 하고 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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