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을 1년여 앞둔 4일 전격 사퇴하면서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대선 인물난을 고민하던 야권은 새로운 잠룡의 등장으로 반(反)문재인 진영이 확산될 것이라며 반색하고 있다. 여권은 4·7 재·보궐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터진 대형 돌출 악재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때릴수록 커지는 윤 총장 존재감을 의식해 정면 대응을 삼가는 분위기도 읽힌다. 다만 여야 모두 ‘정치인 윤석열’의 성공 가능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윤 총장이 향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밝힌 한 문장에서도 정계 진출 의사를 엿볼 수 있다. 윤 총장은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총장의 정계 입문 시기나 방식 등에 대해선 여러 가지 분석이 엇갈린다. 현재로선 한 달여를 앞둔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본 후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야권이 패배할 경우 자연스럽게 윤 총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계개편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제3지대 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최종 승자가 되더라도 중도진영 주도의 정계 개편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국민의힘 후보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장에 당선될 경우 윤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여권은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변수로 거론된다. 향후 여권의 친문 진영과 이 지사가 갈라설 경우 3자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도 성향의 유권자도 윤 총장에게 우호적이다. 정치권에선 중도 성향의 부동층이 윤 총장과 이 지사 사이를 오간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지난해 말 윤 총장 지지율이 상승하던 시기 이 지사 지지율은 주춤한 반면 올 들어 윤 총장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이 지사 지지율이 치솟았다. 부친 고향이 충남 공주로 충청권 인사로 분류되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윤 총장의 정치권 경험이 전무한 것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야권에 윤 총장을 지지하는 정치적 기반도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 초반 ‘적폐청산’ 수사에 앞장섰던 윤 총장의 전력은 보수층의 반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의 보수 성향 정치인도 이런 우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복잡한 경제·외교 이슈에서 윤 총장이 과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있다”며 “황교안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정치권에 들어온 후 ‘찾잔 속 태풍’에 그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정세균 총리는 “윤 총장이 임기 내내 국정철학을 잘 받들고 검찰개혁을 잘 완수해 주기를 기대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선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SNS에 “국회에서 논의 중인 사안을 이유로 총장직을 던진 건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맹비난했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도 “윤 총장은 오로지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에 충성하며 이를 공정과 정의로 포장해왔다”고 논평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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