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더 큰 불의에 분노를

입력 2021-03-07 18:26   수정 2021-03-08 00:06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개발이 예정된 토지를 사놓은 일은 도덕적 기반이 많이 허물어진 우리 사회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다. 내부자 거래는 어느 사회에서나 나오지만, 대개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진다. 이번 사건에선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공공연하게 내부 정보를 이용했음이 드러났다.

내부자 거래는 민간 회사에서 주로 나온다. 토지와 주택 분야에서 국가 기능을 대행하는 공기업 직원들이 토지 거래에서 내부자 거래를 한 것은 공기업의 신뢰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증권 거래에선 당사자들이 서로 모르므로, 내부자 거래는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의 성격을 띤다. 이번 사건은 비대칭 정보를 이용해 특정 토지 소유자의 잠재 이익을 훔친 것이어서, 더욱 부도덕하다.

그러나 이 사건 자체보다 훨씬 문제인 것은 이 사건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다. “신도시 투기 의혹이 일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뿌리 깊은 구조에 기인한 것이었는지 규명해서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됐다. 이어 국무총리실,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경찰청으로 이뤄진 ‘LH 땅 투기 의혹 관련 정부합동조사단’이 출범했다. 현 정권의 문제적 행태가 다시 나온 셈이다.

먼저, 내부자 거래를 ‘투기 의혹’으로 규정한 것이 문제적이다. 투기는 범죄가 아니다. 투기라 불리는 행위들은 실제로는 시간적 및 공간적 가격 격차를 줄여서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준다. 이미 내부자 거래의 증거들이 나온 터에, 굳이 ‘땅 투기 의혹’이라고 둘러댄 것이다. “일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의 가능성을 앞세운 것도 문제적이다. 조사 방향을 암시한 셈 아닌가?

다음엔, 조사단 구성이 비상식적이다. 애초엔 사고 공기업의 주관 부처인 국토부가 주동해 조사하라고 지시했는데, 뒤늦게 구색을 갖췄다. 게다가 국토부 장관은 LH 직원들의 내부자 거래가 이뤄졌을 때 그 기관의 수장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발본색원하라”고 당부하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정상적 사회라면, 국토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을 것이다.

이런 일은 감사원이 조사에 나서는 것이 정상적이다. 굳이 감사원을 배제하고 국토부에 맡긴 데서 대통령의 뜻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감사원의 기개 높은 조사로 월성 원자력 발전소 관련 범죄가 드러나 대통령 자신이 혐의를 받는 처지니, 자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감사원을 배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겼을 테다. 이것은 중대한 과오다. 이제라도 이름만 거창한 조사단을 해체하고 감사원에 조사를 맡기는 것이 온당하다.

대통령의 이런 문제적 행태에 비기면, LH 직원들의 내부자 거래는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거센 분노는 내부자 거래를 한 사람들에게로만 향한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은 그런 구체적 불의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거세게 분노한다. 대통령의 상식과 관행에 벗어난 행태를 판단하는 데는 깊은 분석이 앞서야 한다. 그래서 분노를 부르는 경우가 드물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사회적으로 소중한 자산이다. 그것은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힘 가운데 하나다. 사회는 구성원의 협력을 통해 유지된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추구해 사회를 해치는 사람들을 응징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많은 비용이 드는 응징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불의에 대한 분노다.

당연히 불의에 대한 분노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작은 불의에 너무 거세게 분노하면, 큰 불의를 응징하는 데 쓸 분노가 부족해진다. 세상을 제대로 알기 전에 작은 불의에 너무 많은 분노를 퍼부은 사람들이 뒤에 냉소주의자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현 집권 세력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거대한 불의를 잇달아 저질렀다. 검찰 수사가 청와대로 향하자, 수사를 막으려고 근본 규범을 마구 허물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의 도덕은 빠르게 허물어졌다. 특히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시민의 가장 저열한 본능을 자극해 도덕심을 해쳤다. 그런 불의에 저항하려면, 불의에 대한 분노라는 소중한 자산을 아껴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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