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환 서울회생법원장 "파산자 낙인 찍지 말아야…회생 돕는게 경제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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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3-07 18:00   수정 2021-03-08 00:35

서경환 서울회생법원장 "파산자 낙인 찍지 말아야…회생 돕는게 경제에 도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등으로 회생법원을 찾는 민원인이 크게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법원이 접수한 법인파산(1049건)과 개인파산(5만925건)은 각각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1.7%와 13% 증가했다.

서경환 서울회생법원장(55·사법연수원 21기·사진)은 “회생법원의 존재 이유는 채무자의 ‘구제’와 ‘배려’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채무자가 제출하는 서류를 대폭 간소화하는 등 개인과 기업에 회생법원의 문턱을 낮추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 법원장은 쌍용자동차와 이스타항공 회생사건을 맡고 있는 등 국내 파산·회생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처음 서울지방법원 파산부에서 근무했고, 2013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 2019년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지냈다. 그는 올해 확대 도입된 법원장 추천제를 통해 지난달 9일 서울회생법원의 수장을 맡았다.

▷‘법원장 추천제’로 임명된 첫 회생법원장이다.

“(서울회생법원 판사들이) 사법행정의 민주성과 전문성을 고려해 추천했다는 점에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그동안 도산 부문에서 쌓은 전문성과 경험이 고려된 것 같다.”

▷취임 뒤 법원 구성원들에게 강조한 것이 있나.

“회생법원의 존재 이유는 사건 신청자인 채무자에 대한 ‘구제’와 ‘배려’에 있다. 이들에 대한 배려와 절차의 투명성이 중요하다.”

▷채무자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가.

“법인이 아닌 개인은 법원을 찾아오기 어렵다. 서류도 많고 변호사도 찾아야 한다. 2019년까지는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려면 총 29종의 서류를 내야 했다. 이걸 작년부터 14종으로 간소화했다. 문턱을 더 낮춰야 한다.”

▷제도 악용 사례가 있지 않겠나.

“충분히 검증 가능하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세금을 내다가 안 낸다면 해당 재산이 어디로 갔는지 등을 살펴보고 필요하면 추가 서류를 요청한다. 개인파산처럼 개인회생 부문의 절차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개인 및 법인 파산 신청이 많이 늘었다.

“특히 가계부문이 걱정이다. 지난해 말 국내 가계부채가 1726조원을 돌파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가 100%를 넘는 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우리가 유일하다. 이대로 가면 무리하게 빚을 낸 개인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서류 간소화 외에 채무자에 대한 또 다른 배려가 있나.

“지난달 15일 발표해 적용하고 있는 ‘추가생계비’ 제도를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법원에 내는 개인회생 변제금을 낮추는 것이다. 개인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3년간 최저생계비(중위소득의 60%)를 제외한 거의 모든 소득을 법원에 내야 한다.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등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빡빡하다. 이젠 가족 중 누가 아프다거나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 입증서류를 내면 추가생계비를 인정해준다. 매달 변제금이 줄어드니 회생절차를 끝마칠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별면책 제도도 있다. 개인회생 절차를 밟다가 노동능력을 잃거나 장기간 실직 상태여서 변제를 감당할 수 없다면 특별면책을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법원은 지난해 7월 실무준칙 개정을 통해 특별면책 자격을 완화했다. 이후 서울회생법원의 경우 8~12월에 133건이 접수됐다. 면책률도 50%가 넘는다.”

▷채무자의 빚을 줄여주거나 탕감해주는 것이 ‘도적적 해이’를 야기하지 않을까.

“미국에선 경제학적으로 이미 끝난 논쟁이다. 어려움을 겪는 개인과 기업이 시장 체제로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게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

▷채권자를 위해선 무엇을 하나.

“특히 법인 도산에선 채권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생 혹은 파산을 신청하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어떤 기준에서 무엇이 바뀌겠구나’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도산법원들은 재판과 관련된 ‘로컬룰’(실무준칙)을 공개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판사들끼리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기준도 공유한다. 일반 법원은 ‘앞으로 우리가 이런저런 기준으로 선고할 겁니다’라고 공개하지는 않는다. 회생법원은 ‘심판’으로서 투명성을 높이고 채권자에게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

▷최근 중소기업들은 회생보다 파산을 신청하는 경향이 강하다.

“법인회생을 하려면 청산가치보다 ‘계속기업가치’가 더 크다는 게 증명돼야 한다. 그게 안 될 경우 파산을 택하는데,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올해 더 많은 기업이 회생보다 파산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회생법원 찾는 기업에 조언한다면.

“기업이 부상 정도가 낮을 때 조기에 법원을 찾아야 한다. 버티고 버티다 회생법원에 오면 사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지난해 한 전자업체(코스닥시장 상장사)가 회생을 신청했는데 37일 만에 회생계획 인가 결정을 받았다. 역대 최단기간으로 회생절차에서 벗어난 것이다. 회사 측이 처음부터 회생계획안을 구상하고 비교적 일찍 회생절차에 들어온 덕분이다.”

▷국민들이 효율적으로 도산 절차를 이용하도록 국가 차원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나.

“현행법이 제한하는 부분이 많다. 예컨대 개인이 파산 선고를 받으면 200여 개 직종에 취업할 수 없다. 일종의 ‘낙인’을 찍는 셈이다. 심지어 입주자대표회의 대표나 아이돌봄이, 국비유학생도 될 수 없다. 미국에선 파산 선고를 받은 사람을 차별하지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인회생의 한계(담보채권자 10억원, 비담보채권자 5억원)도 2003년 신용카드 대란 때 만들어진 기준이다. 지금과는 물가 차이가 크다. 다행히 법무부가 채무자회생법 개정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서울회생법원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전문법관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현재 회생법원의 전문법관은 3년간 근무하는데 전문성이 쌓일 만하면 떠난다. 국민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도산 절차는 선박이나 금융 등 업종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에 관련 경험이 중요하다. 장기 근무 법관제도가 도입됐으니 전문성이 필요한 회생법원에선 최소 5년의 근무기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경환 법원장은…
서경환 서울회생법원장은 법원 내 최고 도산 전문가로 꼽힌다. 국내 개인회생·파산 제도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다. 토종 도산 전문가를 양성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국가 지원을 받고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현지에서 소비자파산을 연구한 뒤 국내 개인채무자회생법의 초안 작업을 맡았다. 서 법원장은 ‘세월호 사건’을 맡기도 했다. 2015년 광주고법에서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세월호 승무원 15명의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이 선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양형 사유등을 직접 쓴 판결문을 읽으며 울먹이면서 현장의 유가족들이 따라 울기도 했다.

·1966년 출생
·건국대사범대학 부속고, 서울대 법대 졸업
·1988년 30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21기)
·1992년 공군법무관
·1995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판사
·2000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수
·2003년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2008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2013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2016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2019년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
·2021년 서울회생법원장

남정민/문혜정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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