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희의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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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3-10 13:55  

[인터뷰] 김성희의 파랑새



[박찬 기자] 과거의 발자취는 그 나름의 주제 의식을 담는다. 언뜻 어둡고 가리워진 길이었음에도 성찰을 거쳐 결국 믿음으로 우리를 이끌곤 한다. 그런 의미로 지난날은 결코 지난날로서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는다. 지향점 앞에서 어떤 과거를 안고 가느냐에 따라 미래를 지탱하는 구간이 달라지는 것이다.


1997년 KBS 2 ‘파랑새는 있다’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김성희 또한 그렇다. 당시 단면적인 역할에 염증을 느껴 새로운 작품에 승부수를 띄었지만 연기 변신이 쉽지 않았다는 그. 이후 23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연기에 대한 열망은 전보다 훨씬 더 깊어졌고 성장했다. 걸어온 발자취만큼이나 풍부한 여정을 담을 수 있었다고.


“배우는 뚜렷한 가치관과 강철 같은 심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전하며 그의 눈은 쉴새 없이 번뜩였다. 사람의 감정은 눈빛을 통해 드러난다는 말이 있듯이, 배우 김성희의 눈동자도 그 의지를 고스란히 표현하며 마주했다. 여느 20대 배우 지망생에 못지않은 그 꿈과 목표를 갖춘 채로 말이다.


Q. 오랜만의 화보 촬영, 기대감을 만족했는지 궁금하다


“물론이다. 과거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촬영한 적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전문적인 화보 촬영을 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90년대 초의 김성희로 돌아간 기분이다(웃음)”


Q. 근황


“최근 독립 영화 스틸 작업을 한 작품 했고,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했다”


Q. 2019년 단편영화 ‘미희’에 출연했다. 2년 만의 촬영장을 나선 느낌은 어땠나


“사실상 2년이 아닌 10년 걸린 느낌이다. 2018년에 아침드라마를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정말 잠깐 나왔기 때문에 별로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희’는 내가 연예계 데뷔한 이래로 처음으로 영화 출연에 도전하게 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더 뜻깊게 다가오더라. 처음엔 한지일 선생님의 애인 역이었지만 연령 차가 너무 많이 나서 딸 역할로 바뀌게 되었다. 이번 작품으로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은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디딤돌을 딛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더욱더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연기 활동을 쉬는 동안 성우에 도전한 적도 있다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의욕이 엄청난듯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방과 후 수업 강사 일을 위해 마술 관련 자격증을 따본 적도 있을 정도로 새로운 분야에 대해 스스럼없이 도전해보는 편이다. 수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교육에 대한 목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채널이 국한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배우라는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강점과 특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언뜻 보면 연기와 관련 없을 것 같은 분야의 강의에 참여하기도. 이때 경험이 향후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도서실에서 공부하다 보니 모르는 분야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재밌더라. 성우 수업을 듣던 중 그곳 노조위원장님의 권유에 중앙대학교 CEO 과정을 듣게 됐다. 다양한 전문인들이 모여서 인문학, 4차 산업 혁명 등 미래적 주제의 강의에 참여하는 거다. 그때 세상엔 연기 말고도 정말 여러 분야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느꼈고, 내가 살아가는 이 길에도 아주 의미 있는 수업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감사하게도 ‘고려대 최고위정보통신과정 ICP’에서 한번 책임교수를 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다. 강의를 직접 서는 게 아니라 대표님들을 모시고 수업을 한 번씩 진행하는 직무였는데, 내가 학생으로서 강의를 다녔을 때와 직접 책임교수로서 강의를 진행하는 건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일을 하면서 5kg 빠지고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리더십이 무엇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Q. 2017년에는 오페라 ‘아리아의 밤’ 해설을 직접 맡기도 했다. 평소에 희곡 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건가


“사실 그렇진 않았다. 당시 성악가 친구의 제안을 받아서 아리아의 밤 해설을 맡게 됐는데, 내가 직접 공부해서 해석하는 일이다 보니 처음엔 쉽지 않더라. 무척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이라는 걸 공부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고려대 ICP 강의에서도 반응이 무척 좋았던 작품이다”


Q. 그러면 요즘에도 희곡 작품을 꾸준히 접하는지


“관심은 꾸준히 있다(웃음). 5월엔 클래식 피아노 연주회가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취소가 안 된다면 그 사회를 볼 예정이다. 희곡 작품과 클래식 연주회는 크게 다른 성격이지 않나. 그래서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배경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숙제다”




Q. 사회자 자리에 요청이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연기할 때는 캐스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사회를 봤을 때는 오히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오페라 ‘아리아의 밤’을 강의에서 다뤘을 때 그 작품에 대해 몰랐던 분들은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말을 해주셨고, 일반문화예술 사회를 봤을 때는 리액션과 순발력이 좋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Q. KBS 14기 탤런트 출신이다. 손현주, 이병헌 등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가 많은데 이렇게까지 확 뜰 거라고 예상했나


“당시로선 못했다. 동기 이병헌은 개구졌고 재밌는 아이였다. 항상 아침에 나를 차 태워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성격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면 매사 긍정적이고 차분했다는 것. 개인적으로도 정말 멋지게 생각하는 동기다. 한국에선 이미 스타인데 무술 연기를 직접 다뤄 해외 영화에도 진출한 용기는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Q. 손현주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현주 오빠와는 단역 출연을 함께 몇 번 한 적이 있다. 병헌이만큼 대화를 많이 해보지는 못했지만 보이는 이미지처럼 평소에도 차분한 편이다”


Q. 과거 불륜을 저지르거나 술집 여성 등 주로 단면적인 성격의 역할을 맡았다. 어린 나이에 섭섭한 감정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당시로선 싫었다. ‘파랑새는 있다’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지만 일일연속극에서 또 다방 레지역 제의가 들어오더라. 국한된 모습의 연기가 아닌 다양한 작품 속 인물을 맡아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유명한 스타도 아니고, 술집 여성 역할을 정말 잘하는 사람도 아닌데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느낀다. 자연스럽게 캐스팅 제의도 점점 끊기게 되었고”


Q. 1997년, 오랜 무명 기간을 접고 KBS 2 ‘파랑새는 있다’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당시 최고 시청률이 57.3%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운경 선생님께서 서민들의 애환을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내 주셨다. 그 힘든 고난과 역경 뒤 희망이라는 파랑새를 심어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 아닐까 싶다”


Q. 요즘엔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작품이 없는 것 같다. 그 부분에선 시청자로서 아쉬운 마음이 있는지


“있다. 요즘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기보다는 대부분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스토리에 매료되지 않나. 그만큼 드라마 속 휴머니즘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Q. 성매매 업소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 보면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이다. 클럽 내 댄서 ‘박영자’역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댄스 클럽에 직접 찾아가 춤추는 아가씨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춤을 배웠다. 그런 세계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당시엔 다소 충격적이었다”


Q. 작품의 원제는 ‘파랑새는 없다’였지만 좀 더 희망적인 주제를 담고자 ‘파랑새는 있다’로 바뀌었다고. 본인이 생각했을 때 이 작품을 통해 얻은 ‘파랑새’는 무엇이었을까


“내 무너졌던 자존감을 올려주었고, 무명의 늪에 어느 정도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줬다는 것. 그때 연출 담당이셨던 전산 감독님에게도 감사하다. 이전 다른 작품들부터 함께 했는데 조교, 교수, 술집 여성 역까지 내 다양한 얼굴을 발견하고 새로운 배역으로 이끌어주셨다. 그 부분이 나에게 있어 ‘파랑새’가 아닐까 생각한다”




Q. KBS2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기도. 단막극 형태라는 특성이 어색하진 않았나


“너무 좋았다. 일단 주인공이지 않나. ‘파랑새는 있다’에서 씬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은 있지만 이런 작품 스토리상의 주인공은 아니였다. 그렇게 한번 배역을 수행하고 나니 카타르시스가 찾아올 정도로 새롭더라(웃음). ‘파랑새는 있다’가 긴 시간 동안 인물의 행보가 점점 변해가는 내용이라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같은 경우엔 짧은 시간 동안 이 사람의 모든 것을 쭉 보여주는 내용이라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부부의 이야기이다 보니 장편, 단편 관계없이 그 인물의 감정적 표현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하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Q. 방송상에서는 불륜 연기를 보여줬는데 실제 가정 내 분위기는 어떤 편인가


“‘속풀이쇼 동치미’에 나간 후부터 내 가정생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정에 충실했고, 많이 참고 유지했다고 느낀다. 물론 남편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Q.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차마 말하기 힘든 가정적 상황도 고백하곤 하더라


“원래 가족을 이루다 보면 힘든 일이 찾아오는 법이다. 엄마들은 그걸 참을 수 있는 거고”


Q. 과거 방송에서 딸이 영화배우를 꿈꾸고 있다고 들었다. 엄마로서, 인생 선배로서 도와주고 싶은 부분은


“고3인데 공부는 안 하고 살이나 빼고 있다(웃음). 배우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따라서 가려 하지 말고 정말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라는 말을 줄곧 해준다. 배우는 뚜렷한 가치관과 강철 같은 심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무너질 때도 있고 검은돈으로 유혹당할 때도 있기 때문에 옳은 신념이 없다면 배우 생활은 힘들다. 진심으로 배우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면 화려한 모습만 눈에 담지 말고 인문학 공부도 병행하면서 도전하길 바라고 있다”


Q. 결혼 생활을 위해 잠시 연기 활동을 쉬지 않았나. 그 과정 속 얻은 결과물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캐스팅이 안 들어온 거다. 배우들이 원래 질투가 많지 않나. 이런 많은 과정을 겪고 느낀 건 내가 필요한 자리가 따로 있다는 거다. 내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 대해 욕심을 부리는 건 본인에게도 좋지 않다고 느낀다. 돈도 없어 보고, 아기도 낳고 힘든 과정을 다 겪다 보니 그동안의 강한 역풍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미래에 대한 준비도 그 이후 시작하게 된 거고. 언젠가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더라도 준비가 갖춰져야만 그것을 비로소 완벽히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연기는 좋아하는 일인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좋아하는 일이다. 연기를 생각하면 너무 행복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우울증이 사라지며, 내 에너지가 높이 분출된다. ‘마이클 케인의 연기 수업’을 보면 ‘배우는 연기를 얼추 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태껏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는 최선을 다하고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최고의 결과물은 아니었던 거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계점을 딛는 역량으로 작품에 임해보고 싶다”


Q. 인생에 있어 전성기는 아직 안 왔다고 생각하는지


“제2의 인생은 꼭 온다고 생각한다(웃음).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좋은 작품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자신한다”


Q. 배우로서 아직 부족한 점과 노력해야 할 것


“그건 아마 어떤 작품과 배역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연기하는 것을 연기로 보이지 않게끔 노력하는 것, 캐릭터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 모두 필요하다”


Q. 많은 배우들이 연기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연기에 대해 20대에 느끼는 것과 지금 느끼는 것, 달라진 점이 있다면


“20대에는 연기 활동에 그저 몰입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30대에는 이 정도면 되겠다 자신 있었고, 40대에는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에 좌절했다. 그리고 50대인 지금, 연기할 때는 섬세함이 필요하고 그것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접하는 상황이다”


Q. 활동 계획


“지금처럼 열심히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다 보면 내게 맞는 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을 맡든 열심히 할 자신은 있지만 털털하고 중성적인 역할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설은주
의상: bnt collezione(비앤티 꼴레지오네)
아이웨어: 랜드스케이프(Land scape)
헤어: 코코미카 성익 이사
메이크업: 코코미카 경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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