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은행 돈도 쌈짓돈처럼 쓰나

입력 2021-03-10 17:50   수정 2021-03-11 00:21

아무리 선거가 급해도 너무 나간 것 같다. 노점상 재난지원금 말이다. 전국 노점상 수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어림잡아 4만 명 정도 되겠거니 하고 200억원을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했다고 한다. ‘퍼주기 끝판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정부·여당도 스텝이 꼬였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는지, 사업자 등록을 전제로 1인당 50만원을 주겠다고 하자 노점상들이 환영은커녕 불만을 쏟아냈다. “굶어 죽을 판인데 지원금을 미끼로 사업자등록을 하라는 것인가”라며 발끈한 것이다. 소상공인들은 “세금 한 푼 안 내는 노점상을 지원하느라 세금을 내고 장사해온 자영업자의 지원금이 줄었다”고 반발했다. 양쪽의 등쌀에 정부가 난감해하자 이번엔 농어민들이 “노점상과 대학생도 주는데 농어민은 왜 안 주느냐”고 불만이다.
'퍼주기'에 동원되는 은행들
오는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대선 국면이다. 후보들의 포퓰리즘 경쟁에 세금 퍼주기는 더 격렬해질 것이다. 나라 곳간을 지켜야 할 기획재정부의 결기는 ‘미래 권력’ 앞에 점점 약해질 것이다. 퍼주기는 나라 곳간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은행들도 무차별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130조원의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가 그렇다. 지난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자 금융당국은 그해 4월부터 원리금 상환을 6개월씩 두 차례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달 말 종료 예정이었지만 최근 이를 9월 말로 또 연장했다. 여기까지는 은행들도 백번 양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국은 9월 말 이후 원리금 상환 기간 및 방법을 은행과 협의하되 차주가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가까이 원금 상환을 미룰 수 있게 된다. 한 은행장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코로나19 이전부터 어려웠던 한계기업까지 모두 지원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런 나쁜 선례가 쌓이다 보면 차입금을 정상적으로 갚는 사람들도 ‘나만 손해보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고, 결국에 집단적인 모럴 해저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은행의 우려다. 금융당국이 은행장들을 만나 협조를 구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지만 누가 봐도 ‘팔 비틀기’다. 당국의 중징계 칼날 위에 서 있는 은행장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되살아나는 '관치금융' 망령
이런 와중에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 이재명 경기지사가 은행을 발칵 뒤집어놨다. 경기도 청년층에게 신용도와 관계없이 연 3% 금리로 500만~1000만원의 신용대출(10년 만기)을 할 수 있는지를 5대 은행에 문의했다. 겉으론 ‘문의’였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요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은행 여신담당자들은 “경기신용보증재단이 보증을 선다고 하지만 신용도를 보지 않고 대출해준다면 그게 은행이냐”고 한탄했다. ‘관치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두렵다고 한다.

요즘 정치권과 정부의 행태를 보면 은행 자금을 재정처럼 쓰려는 것 같다. 은행 돈은 예금주와 주주의 것이다. 은행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할 뿐이다. 나랏돈도 쓰려면 법률에 따라야 하는데 금융정책이란 이름으로 민간 은행의 돈을 멋대로 쓰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경제 혈맥인 금융산업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어서다. 은행업의 경쟁력은 날로 후퇴하고 있다. 국내 은행주(株)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년 전 1배에서 지난해 0.4배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31위다(금융연구원 분석). 포퓰리즘과 관치에 금융산업이 멍들고 있다.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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