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최대 리스크는 '서울 집중'…기업들이 먼저 흩어져야"

입력 2021-03-14 17:17   수정 2021-03-22 18:21


“언제 또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할지 모르는데 한국은 수도 서울 집중도가 일본보다 심각하다. 기업 스스로 분산을 통해 위험을 낮추지 않으면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이 될 것이다.” 오야마 겐타로 아이리스오야마 회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인으로 꼽힌다. 아이리스오야마가 작년 초 일본에서 벌어진 마스크 품귀 현상을 해소한 일등 공신으로 떠오르면서다. 일본 정부의 공급망 재편(리쇼어링)정책 1호 기업에 선정된 아이리스오야마는 중국의 생산시설을 일본으로 옮겨 월 1억5000만 장의 마스크를 생산했다. 오야마 회장은 재일동포 3세다. 19세이던 1965년 물려받은 영세 플라스틱 공장을 56년 만에 매출 6900억엔(약 7조2338억원)의 기업으로 키웠다. 한국 증시 시가총액 15위 LG생활건강과 맞먹는 규모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화상 인터뷰를 한 오야마 회장은 출산율 통계부터 입시 전쟁, 취업난 등까지 한국의 사정을 꿰뚫고 있었다.

▷일본에서 사업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

“차별받은 적은 없다. 핸디캡(불리한 조건)은 있었다. 헝그리정신은 배를 채우면 사라지지만 핸디캡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정신적인 핸디캡은 에너지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국민과 기업인이 전쟁의 핸디캡을 극복한 결과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젊은이의 핸디캡이 사라졌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북아 국가는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이웃해 있다는 엄청난 핸디캡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본 기업과 비교할 때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부터 일어서자는 에너지가 일본을 일으켜 세운 것처럼 한국도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려는 강한 에너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업은 후발주자로서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의욕이 강하다. 이게 에너지가 됐다고 본다.”

▷사업하면서 느끼는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산업구조는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자 약점이다. 일본 가전이 한국에 따라잡힌 원인에 양국 기업의 약점과 경쟁력이 반영돼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래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하청기업이 엄청나게 발달했다. 일본의 대형 가전업체는 해외의 기술을 차용해 일본식으로 개조한 뒤 하청업체들에 부품 생산을 맡기기만 하면 됐다. 하청업체 부품을 사들여 조립하는 ‘어셈블리 업종’이 된 것이다. 이 덕분에 세계와의 격차를 매우 빨리 메웠다.”

▷하청업체가 발달한 게 약점이 되기도 했나.

“하청업체로부터 조달받은 부품을 조립해서 판매하니 리스크는 낮았다.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으면 제품을 생산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력은 뒤처졌다. 스피드와 가격경쟁력 면에서 한국과 중국에 따라잡히고 말았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일본에 비해 하청업체가 발달하지 않은 핸디캡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됐다. 제품의 기획부터 설계·제조까지 스스로 하는 내재화율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스스로 리스크를 떠안아가며 사업을 하니까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의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일본보다 더 서울에 대한 집중도가 심각하다. 한국은 수도 기능을 이전할 것이 아니라 기업을 분산시켜야 한다. 기업 스스로가 각 지역으로 하루 빨리 분산해야 한다. 언제 또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밀어닥칠지 모르는데 집중의 리스크를 분산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의 가장 큰 약점이 될 것이다.”

▷서울 집중도가 약점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사실 수도 집중도가 심하면 기업으로서는 좋다.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원에게는 좋지 않다. 물가가 비싸고 집값이 오른다. 그 결과 회사는 점점 성장하지만 개인의 생활은 그다지 풍족해지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윤택해 보일지 몰라도 집값과 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아이를 안 낳지 않나.”


▷기업 스스로 분산할 이유는 없지 않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내수 시장 규모가 작다. 그러다 보니 기업 구조가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됐다. 한국의 무역수지가 흑자를 이어가고 기업의 시가총액은 커졌지만 개개인의 삶은 풍족해지지 않았다. 지금처럼 월급 대부분이 집값과 교육비로 사라져서는 개인 소비가 늘지 않고 생활도 나아지지 않는다. 한국 국민의 생활 기반을 풍족하게 해서 소비력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한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내수 시장을 키우지 않으면 한국 기업의 해외 공장을 애써 한국에 되돌려도 의미가 없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공장에서 만들어 다시 한국에 수입하는 상품은 인센티브를 줘 국내로 유턴시키고 고용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기업 대부분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지 않나.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면 경쟁력만 사라질 뿐이다.”

▷일본 취업을 꿈꾸는 한국 젊은이가 많다.

“아이리스오야마 한국 법인을 통해 매년 대졸자를 채용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학생은 브랜드주의가 너무 강하다. 따지고 보면 대기업도 원래는 중견·중소기업이었다. 최근 10년간 한국 학생의 도전정신이 크게 떨어진 게 느껴진다.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나는 훌륭하다’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양국의 불행한 과거는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한국인이 식민지 시대를 인식하는 방식과 일본인이 당시를 인식하는 방식은 언어의 차이만큼 클 수밖에 없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뒤만 보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미래를 내다보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역사 문제는 잠시 내려두고 경제 면에서 지속적으로 연계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식 지배구조에 대해 우려했는데.

“한국과 일본 모두 전후 미국의 금융자본과 기술에 힘입어 성장했다. 제품을 미국에 팔아 성장하고, 주식을 상장(IPO)하면 미국의 금융회사나 펀드가 주식을 보유하는 구조였다. 그 결과 현재 상장사 대부분의 주요 주주가 금융회사와 펀드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체제가 된 것이다.”

▷금융자본주의가 문제인가.

“회사를 설립 목적에 따라 운영하기보다 이익과 배당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대주주들이 압박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일 기업 모두 자립할 힘이 있다. 주주가 소유권을 가지지만 매출을 발생시키고 이익을 올리는 건 주주가 아니라 경영자와 사원이다.”

▷기업가 정신이 약해졌다고 우려한다.

“일본 기업은 성장하면 곧 상장해 버린다. 상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눈앞의 경영실적에 연연하는 것은 사실이다. 전후 70년이 지나면서 패전의 핸디캡을 가진 오너 기업이 사라지고 우수한 샐러리맨이 임기 4~6년의 경영자가 되고 있다. 이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매우 뛰어나지만 보이지 않는 사업 기회를 포착하거나 글로벌 관점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러니 당면 과제를 해결했는데도 세계 무대에서는 뒤처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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