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벤츠도 찾는 'K금형' 돌풍…"日, 더이상 경쟁 상대 아냐"

입력 2021-03-15 14:04   수정 2021-03-15 16:17


자동차 휴대폰 반도체 조선 가전제품 등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모든 제품과 부품의 '틀'을 만드는 금형산업이 지난해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 대미 수출을 기록했다.

에이테크솔루션 나라엠앤디 재영솔루텍 등을 비롯한 국내 1500곳 금형업계의 대표 단체인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금형업계 수출은 28억8055억달러(3조2700억원)를 기록해 전년(28억3168억달러)보다 1.7%증가했다.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이 전체의 98%를 차지해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금형업계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는 평가다. 전체 금형 생산은 전년과 비슷한 9조원대로 추정된다.

국가별 수출비중을 보면 미국 수출이 3억8717만달러(4400억원)로 가장 높은 비중(13.4%)을 차지했고 일본, 베트남, 인도, 멕시코, 중국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 수출은 전년대비 52.2%급증한 것이다. 미국은 작년 우리나라의 금형 수출 국가 비중에서 5위였으나 올해 처음 1위로 올라섰다. 1981년 금형조합이 업계 통계를 작성한 이래 40년만에 최대치다. 그동안 일본과 중국이 줄곧 수출 비중 1위였다.

신용문 금형조합 이사장(신라엔지니어링 대표)은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판매 호조를 비롯해 코로나에 따른 '집콕'영향으로 삼성·LG전자의 휴대폰과 가전제품 수요가 북미지역에서 급증해 금형업계 수출도 덩달아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미 자동차 공장의 ‘허브’가 되고 있는 멕시코 수출 역시 지난해 전년 대비 42.9%급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車 장기 계약, '크리스마스의 기적' 백신주사기 개발 등K금형 돌풍

최근 국내 복수의 금형업체는 프랑스 르노그룹과 3년 장기 계약을 맺고, 르노의 탈리스만(SM6), 캡처, 메간, 캉구, 마스터 등 차종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금형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국내 업체가 글로벌 자동차 제조회사와 건별 수주가 아닌 장기계약을 통해 수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이사장은 "지난해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 금형의 높은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사례가 많았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코로나19 백신을 20%증산하는 효과로 주목받은 풍림파마텍의 최소잔여형(LDS) 백신 주사기다. 일본도 금형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던 이 주사기를 이 회사는 월 2000만개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도움(스마트공장 구축지원 사업) 덕분이다. 세계 최고의 금형기술을 보유한 삼성전자는 최소 수개월 걸려야하는 주사기 금형제작을 단 4일만에 시제품 금형과 시제품 생산까지 끝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때 풍림파마텍과 중소벤처기업부, 삼성전자 등이 처음 머리를 맞댄 후 나온 성과여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테슬라 벤츠 토요타유명車엔 모두 韓 금형기술 접목
금형은 플라스틱을 녹여 틀에 쏘는 사출방식인 '플라스틱 금형'과 금속 재료를 절단하거나 굽혀 성형하는 '프레스 금형', 아연 마그네슘 알류미늄 등 비철금속을 녹여 형상을 사출하는 '다이캐스팅 금형' 등으로 나뉜다. 보통 프레스금형에 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에는 보닛, 루프, 트렁크, 범퍼, 그릴, 헤드라이트, 운전대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2만개 이상의 금형이 필요하다. 신 이사장은 "자동차는 시트를 빼곤 모두 금형으로 제작된다"며 "한 나라 제조 경쟁력의 척도가 금형기술인 이유"라고 소개했다.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700개 부품, 휴대폰내 200개 부품, 대형선박에 들어가는 8만개의 부품 역시 모두 금형에서 만들어진다. 금형산업이 한 국가 제조업 및 전·후방산업의 디자인과 품질, 원가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뿌리산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금형조합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테슬라 벤츠 포르쉐 르노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전세계 유명 자동차엔 모두 한국 금형기술로 찍어낸 부품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파나소닉, 앱손, 지멘스, 보쉬 등에서 만든 스마트폰, 가전제품, 반도체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금형산업의 가장 큰 수요처는 자동차산업으로 전체의 41.6%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가전제품(26.4%), 통신제품(8.9%), 사무기기(3.8%), 반도체(4.5%), 생활용품(9.3%) 등 순이다. 금형업계가 국내 대기업이 아닌 순수 외국 기업으로부터 수주하는 물량 비중도 전체의 50%에 달한다.

세계 2위 수출국…'日 넘어 이젠 獨 따라잡기'
전세계 120여개국에 금형을 수출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독일 일본 미국 중국 등과 함께 세계 5대 금형 생산국이다. 수출규모로는 6년째 세계 2위 국가다. 공장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 수출하는 일반 제조업과 달리, 이러한 제품과 부품의 ‘틀’을 만드는 금형산업은 발주자의 요구대로 맞춤형으로 설계·제작해야하는 수주산업이다. 고도의 기술축적이 필요한 것이다. 신 이사장은 "기계분야 가운데 유일하게 대일 무역 흑자를 보이는 품목이 금형"이라며 "일본은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기계 산업의 '종합 예술'인 금형산업은 한국인 특유의 ‘손끝기술’과 ‘빨리빨리’문화가 접목돼 단기간내 세계 선두그룹에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전자,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금형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크다"고 했다. 실제 고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은 2005년 이탈리아에서 ‘제2의 디자인 혁명’을 선언을 하며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 전략을 밝혔고 2010년 1400억원을 들여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금형개발센터를 광주에 건립했다. “금형기술이 좋아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었다. 구본준 전 LG전자 부회장 역시 “금형은 제품 외관 디자인을 결정하는 핵심 기술"이라며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 있어도 이를 구현할 금형기술이 없으면 헛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금형사업부에서 각각 분사한 에이테크솔루션과 나라엠앤디는 현재 금형업계 대표주자가 됐다.

우리나라 금형 기술은 세계 최고 제조 강국 독일의 문턱을 넘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신 이사장은 "국내 최고의 금형 공장들도 독일 기업이 품질력이 낮다고 발주를 거절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독일과는 아직 특정 분야에서 기술 격차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 예로 독일 기계 부품들은 단차(각 부품들이 꽉 맞물리지 않아 생기는 틈)가 거의 없어 머리카락 두께(약 0.05~0.1㎜)보다 더 작은 오차도 허용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 금형기술을 넘어서는 것이 금형업계의 숙제"라고 강조했다.

올들어 50인 이상 기업까지 확대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제도 금형업계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는 “중국 대만 일본 등 경쟁 국가에서 한달 걸리는 금형 설계·제작 공정도 한국에선 일주일만에 완료해왔다”며 “주52시간 근무제 확대로 이러한 납기 경쟁력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또 연장 근무가 불가능해지면서 급여가 낮아진 금형 인력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기업들이 각종 국내 규제로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 또한 국내 금형 인프라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신 이사장은 ”금형공장 평균 가동률이 작년 70%였는데. 올해는 60%대로 떨어졌다”며 “유동성이 부족한 금형회사에 대한 금융회사의 대출만기 연장과 보증확대 정책도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금형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잘못된 편견과 기술인력 경시 문화도 업계의 장기 숙원 과제다. 그는 “청년실업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정작 금형업계로는 우수인재가 입사하지 않아 기업들이 인력난을 겪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고졸 학력이라도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형전문대 설립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또 그는 “대표적 기술집약 산업인 금형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제조업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며 “정부도 금형인재 양성과 산업 지원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금형조합에 따르면 작년 세계 금형산업 생산은 1550억달러(176조원) 규모로 전년대비 5% 성장했다. 하지만 경기에 후행하는 금형산업 특성상 2021년 매출은 작년 코로나 사태에 따른 기업별 신제품 출시 지연과 이에 따른 금형 발주량 감소 때문에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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