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콘텐츠인사이드] K팝 연합체가 만드는 새로운 미래

입력 2021-03-15 17:07   수정 2021-03-16 00:14


국내 음악산업을 이끌어 온 대표 주자들을 떠올려 보자.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 같은 기획사, CJ ENM 등 콘텐츠 기업, ‘멜론’을 운영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나 네이버 등 플랫폼사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하우를 쌓았다. 그 성과들이 합쳐져 마침내 K팝 열풍이 일어났다.

그런데 최근 K팝 주자들의 움직임이 다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영역의 회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추진 중이다. 힘을 합쳐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투자·서비스도 같이 진행한다. 나아가 다른 산업군으로까지 연결을 확장하고 있다. 동종교배를 넘어 이종교배와 합종연횡이 대세다. 그림으로 치자면 복잡하게 얽힌 하나의 커다란 그물망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IP로 다섯 개 공간 관통
국내 음악산업의 큰 화두는 ‘연결’이다. 전통적인 업의 경계를 허물고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단순히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퀀텀점프를 해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정면 승부를 펼칠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 시너지는 다양한 공간을 아우르며 나타날 전망이다. 하나의 지식재산권(IP)만으로도 5개에 이르는 공간을 관통할 수 있다. 수평적으로는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으로 나아간다. 수직적으로는 오프라인, 온라인, 메타버스(가상공간)로 이어진다.

CJ ENM의 음악사업 부문이 대표적이다. CJ ENM은 방탄소년단을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키워낸 빅히트와 지난해 합작법인 ‘빌리프랩’을 설립하고 아티스트 육성에 나섰다. 그리고 첫 아티스트인 ‘엔하이픈’을 함께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 CJ ENM은 이처럼 아티스트를 발굴한 뒤 이들의 IP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온라인, 메타버스로의 무한 확장을 추진한다. CJ ENM은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와 올해 합작법인을 세운다. 이를 통해 엔씨소프트의 첨단 기술을 접목한 온라인 공연을 선보이고, 메타버스에서도 새로운 K팝 세계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 같은 전략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빅히트와 YG엔터테인먼트도 네이버제트에서 운영하는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에 투자했다. 네이버의 영상 플랫폼 브이라이브와 빅히트의 팬 커뮤니티 위버스도 결합됐다. 과연 이들의 세상에서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시장 뒤흔들 K팝 '메디치 효과'
K팝 주자들의 파격적인 연결은 다른 나라 음악시장에선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물론 이 수많은 연결과 조합이 모두 성공할 순 없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융합이 이뤄지며 상상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서로 다른 분야와 지식이 만났을 때 기존의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상상력이 발휘되는 ‘메디치 효과’가 K팝 시장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석유 시추 과정과도 비슷하게 전개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두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탐사하다 보면, 이 판을 통째로 바꿔버릴 강력한 카드가 어디선가 불쑥 등장할지 모른다.

방탄소년단의 올해 미국 그래미 수상은 불발됐다. 많은 팬이 아쉬워하고 있긴 하지만, 누구도 비관하진 않는다. 오히려 방탄소년단은 물론 K팝 시장 전체에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차원의 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그 과정이 지난하고 성공 확률도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힘을 합쳐 몸집을 키운 만큼 더 높이, 더 멀리 볼 수 있게 됐다. 세계 음악시장을 뒤흔들 K팝 연합체의 발걸음이 새롭게 시작됐다.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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