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성과급 이슈도 털어놓는 소통왕 "기술 리더십·조직 혁신…게임체인저 되겠다"

입력 2021-03-16 17:13   수정 2021-03-24 18:32


삼성전기 직원들은 매주 목요일을 기다린다. 경계현 사장(CEO)이 스튜디오에 출연해 직원들과 대화하는 ‘썰톡(Thursday talk)’이 열리기 때문이다. 사내에는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경 사장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썰톡을 시작했다. 대화 주제에는 제한이 없다. 그의 패션감각이 남다른 이유부터 회사 실적 등 경영 현황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진다. 직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경 사장에겐 원칙이 있다고 한다. ‘솔직하게 답을 주고, 합리적인 제안은 바로 들어주자’는 것이다.
변화의 중심 ‘썰톡’
썰톡은 지난해 1월 이후 40여 회 열렸다. 사내엔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 직원은 “라인에 들어가는 직원들도 네일아트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직원은 “직원식당에서 사무실로 음식을 가져가면(테이크아웃) 일이 더 잘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 사장은 흔쾌히 ‘OK’ 사인을 보냈다.

민감한 주제도 화제에 오른다. 초과이익분배금(OPI)으로 불리는 성과급 관련 대화가 대표적이다. 썰톡에선 “왜 우리는 삼성전자처럼 OPI를 많이 못 받냐”는 한탄 섞인 질문도 나왔다고 한다. 경 사장은 다소 껄끄러운 질문에도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현재 시장 상황과 올해 실적 전망을 고려할 때 성과급은 여러분의 기대치에 못 미칠 것”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올해 삼성전기의 OPI는 ‘연봉의 14%’로 결정됐다. 삼성전기 주요 고객사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OPI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직원들의 불만은 크지 않았다. 한 직원은 “CEO가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을 솔직하게 말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진다”며 “직원들도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썰톡은 최근 한 단계 진화했다. 퇴직 CEO가 출연해 노하우를 전수하는 신·구 세대 화합의 장이 됐다. 경 사장이 “선배들과도 소통해보자”며 아이디어를 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기 역대 최장수 CEO인 이형도 전 부회장을 시작으로 이윤태 전 사장, 박종우 전 사장 등이 썰톡 무대에 올랐다. 20년 만에 회사를 방문한 이 전 부회장은 “삼성에서 33년, 삼성전기에서 100개월은 훌륭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확신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어디서든지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대선배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천재 엔지니어의 ‘직원 중심 경영’
경 사장은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이다. 1988년부터 2019년까지 삼성전자 DS(반도체부품)부문에서 일하며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팀장, 플래시개발실장, 솔루션개발실장 등을 지낸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다. 세계 최초 다이렉트 램버스 D램 개발(1997년), 3차원 V낸드플래시 개발(2013년), 128단 3D 낸드 탑재 SSD 출시(2019년) 등을 모두 주도했다. 2014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았고 2016년엔 ‘한국을 빛내는 70인의 서울공대 박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딱딱한 조직문화로 유명한 삼성전자 DS부문 출신이 CEO로 온다는 소식에 삼성전기엔 긴장감이 팽배했다. 기우였다.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경 사장의 소탈한 성격이 취임 첫날부터 바로 드러났다. 그는 취임식을 생략하고 수원사업장에 들러 직원들과 만났다. 지난해 창립기념일엔 처음으로 부산사업장에서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런 스타일은 삼성전자 임원 시절부터 다져온 것이다. 경 사장은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탐독할 정도로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팀장을 맡았을 땐 팀원 중심의 조직문화와 업무환경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2012년엔 삼성전자 DS부문이 선정하는 ‘GWP(Great Work Place) 대상’을 받았다.

경 사장은 몇 가지 새로운 인사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우선 사내 메신저와 회사 인트라넷에서 직원의 직급 표시를 없앴다. 입사연도를 알 수 있는 사번의 앞자리도 블라인드로 처리했다. 최근엔 승진자 명단을 게시판에 공유하지 않고 승격 대상자에게 개별 안내하도록 했다. 위화감을 줄이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문화를 조성하자는 취지다.
직원들 스스로 만든 핵심가치 ‘RiGHT’
삼성전기 혁신의 화룡점정은 직원들이 직접 삼성전기의 미션과 비전, 핵심가치를 만든 것이다. 컨설팅업체의 제안을 받아 경영진이 결정하는 톱다운 방식과는 달랐다. 조직문화혁신태스크포스(TF)가 중심이 돼 직원들과 소통했다. TF는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직원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이를 구성원과 공유하며 삼성전기의 미래를 그렸다. 중장기 목표를 뜻하는 미션은 ‘최고의 부품과 독창적인 솔루션으로 주주와 고객을 포함한 모두에게 가치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로 정해졌다.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카메라모듈 등을 개발·판매하는 삼성전기 본업과 맞닿아 있다. ‘나도 일하고 싶고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성장기업’이란 비전도 탄생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사고·행동의 기준인 ‘핵심가치’도 새롭게 정립했다. Respect all(모두 존중), Integrity first(정도 중심), Growth mind(성장 마인드), Harmony with(하모니, 조화), Technology for Great(기술 중시)의 앞글자를 딴 ‘RiGHT’다.
기술 리더십 강화…올해도 탄탄대로
소통과 혁신의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기는 경 사장 취임 첫해인 지난해 매출 8조2087억원, 영업이익 8291억원을 거뒀다. 2019년 대비 매출은 6.3%, 영업이익은 11.9% 늘었다.

회사 전반에 ‘능동적으로 일하려는 문화’가 형성된 상황에서 그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경 사장 취임 이후 삼성전기는 비핵심으로 꼽히던 무선통신모듈사업을 매각했다. 정보기술(IT)·전장(전자장비)용 MLCC, 차세대 카메라모듈, 반도체 패키지용 기판 등 미래 먹거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 경 사장의 부임으로 삼성전기의 ‘기술리더십’도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9월 선보인 초소형 파워인덕터가 대표적이다. 이 제품은 반도체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제품 중 세계에서 가장 작다. MLCC와 반도체기판 사업의 노하우를 결합한 결과다. 스마트폰의 ‘카툭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광학 10배줌 카메라모듈’ 양산도 삼성전기 기술력의 상징으로 꼽힌다.

증권가에선 올해 실적에 대해 “탄탄대로를 걸을 것”(대신증권), “올해는 풍년과 다작이 예상되는 해”(DS투자증권) 등과 같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 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최고 기업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경계현 사장은

△1963년 강원 춘천 출생
△1982년 강원고 졸업
△1988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학·석사
△1988년 삼성전자 입사
△1994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박사
△2009년 메모리사업부 D램설계팀장(상무)
△2013년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팀장(전무)
△2014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수상
△2015년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장(부사장)
△2018년 메모리사업부 솔루션개발실장(부사장)
△2020년~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
△2020년 대한전자공학회 해동기술상 수상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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