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SW개발자 인력난의 진짜 이유

입력 2021-03-17 17:49   수정 2021-03-18 00:25

“묻고 더블로 가!”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은 ‘섯다’ 판을 화끈하게 키운다. 호기롭던 배짱의 결말은 비극이다. 곽철용은 은둔 고수 고니의 ‘한끗’에 밟혀 가진 돈 전부를 잃는다. ‘윈윈’이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의 법칙, 승자독식이다. 정보통신기술(ICT)업계를 뒤흔든 파격 임금 인상 도미노에서 타짜를 떠올린 건 두 치킨게임이 묘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인력난의 핵심은 상위 1%
연봉 인상은 개발자의 살림살이가 펴지는 일이니 웃을 일이다. 하지만 정작 웃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개발자의 가치가 이제야 정상화된 것”이라는 당사자 상당수에게서도 굳은 표정이 비친다. 앞으로 떨어질 ‘일감 폭탄’ 등 경쟁의 후폭풍이 시작됐을 뿐이라는 걱정이 앞서는 눈치다.

개발자 유치 경쟁의 뇌관인 디지털 전환은 이미 폭발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은 “입사하기로 약속했던 박사 두 명이 외국 기업으로 방향을 틀어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진짜 문제는 능력 상위 1%, 이른바 ‘풀스택’ 개발자가 없다는 것이다. 한 포털업체 대표는 “연봉 5000만원 개발자 10명과 10억원 연봉 1명 중 고르라면 대개 10억원짜리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알고리즘 설계나 빅데이터 분석은 일정 레벨을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임계치’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 운명을 바꿀 이런 인재는 찾기도 어려운 게 요즘 초연결 시대의 그늘이다. “박사급은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입도선매가 끝난다. 이러다가 초격차 경쟁에서 영원히 뒤처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는 게 한 중견 IT업체 대표의 말이다.

이런 일이 오래전부터 예견돼왔다는 건 더 기막힌 일이다. 컴퓨터과학의 미래가치를 간파해내지 못한 정부, 당장의 진학과 취업에만 매달려온 우리 사회의 합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20년 넘게 이 바닥에 있었지만 필요한 개발자를 제때 확보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컴퓨터 강국’이 곧 올 것처럼 보였다. 연간 200시간씩(초등학교 기준) 의무화했던 컴퓨터 수업이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2008년 선택과목으로 밀렸다. 2015년 다시 의무화로 돌아섰지만 이미 미국 영국 같은 선진국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코딩을 가르치는 등 저만치 달려가던 때였다. 코딩을 처음 접하는 나이가 3~4년이나 늦어진 것이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이미 초·중·고 과정에서 한국의 대학 과정을 모두 뗀다고 보면 된다”며 “요즘 핫한 오디오 SNS인 클럽하우스에서 소방관이나 디자이너, 발레리나 같은 외국인들이 인공지능(AI) 코딩을 자유롭게 논하는 모습은 우리와의 격차를 극명히 드러내는 사례”라고 했다.
'규제 프리' 새 판부터 짜야
규제도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컴퓨터 복수전공을 위한 인문계 학생의 실험실습비를 등록금 인상분으로 간주한다며 억제하는 게 정부다. 서울대는 자율운영이 근간인 법인으로 선회했음에도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늘리는 데 꼬박 6년이 걸렸다. 굴지의 한 국내 대기업은 최근 석·박사 통합 과정을 회사 내에 설치하고 민간 학위처럼 가치를 인정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자급자족을 위해서다. 교육체계의 오작동, 인재 시장의 미스매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하는 일이다.

정부는 대선 공약이란 명분 하나로 가덕신공항을 밀어붙이고 있다. 같은 대선 공약이던 정보과학교사 1만 명 양성은 구호조차 들리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차라리 정부를 AI로 대체하자”는 말이 나올까 걱정이다.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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