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욕망의 전차'에 올라 탄 公僕들

입력 2021-03-17 17:48   수정 2021-03-18 00:28

LH 사태는 평범한 국민에게 ‘현실자각 타임’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내건 ‘더불어 잘사는 세상’에 장삼이사는 해당사항이 없음을 일깨웠다. 그들은 투기꾼이나 복부인의 전형인 기름진 얼굴, 살찐 몸집을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해사한 표정으로 머리 조아리며, ‘내 삶을 책임지는 나라’를 만든다던 공복(公僕)들이다.

공기업 직원들로 시작해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공무원 그리고 무수한 전관들…. 어디서 얼마나 더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파면 팔수록 노다지일 것이다.

그들의 투기 수법은 국민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현금부자의 아파트 ‘줍줍’은 새 발의 피다.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목 좋은 땅은 물론 맹지라도 사두기만 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둔갑한다. 그들에겐 이런 ‘헤븐 조선’이 따로 없을 것이다.

사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아닌 척해도 더 먹고, 더 벌고, 더 갖고, 더 누리고 싶어하는 존재다. 작은 틈새만 있어도 물이 스며드는 게 세상이치 아닌가. 누구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 올라타고 싶을 것이다. 이런 욕망의 무한질주를 억제하는 게 개개인의 도덕, 직업윤리, 내부통제 시스템 그리고 법의 지배(法治)다. 그게 선진국이다.

적어도 국민 혈세로 녹을 먹는 공직자라면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나라 기강이 흐트러질 때 그런 억제 기제부터 먼저 무너진다. 조국·윤미향 사태를 겪으며 사회윤리는 아노미에 빠졌다. 줄 세우기 코드인사와 적폐청산 소동으로 공직사회의 직업윤리도 희미하다. 정치가 모든 걸 집어삼키는 동안 국가의 내부통제 시스템도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해도 ‘유권무죄(有權無罪)’라는데 누구나 예외 없는 법치를 언급하기도 민망하다. 신종 관존민비이자 ‘권존민비(權尊民卑)’의 나라가 된 셈이다. 지금 국민이 목도하는 것은 권력과 정보를 가진 이들이 집과 땅을 움켜쥐고, 호의호식하며, 자녀 입시 특혜와 전관예우까지 알뜰히 챙겼다는 사실이다. 공직자로서 솔선수범하랬더니 먼저 ‘욕망의 전차’에 냉큼 올라탄 꼴이다.

대통령은 2주가 지나서야 국민께 송구하다면서도 부동산 적폐청산을 다짐했다. 그 적폐란 게 뭔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이번 공직자 부패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라고 국민을 대신해 반박했다. 이런 신(新)적폐 말고 뭘 청산한다는 것인가. 전(前) 정권들을 털어 먼지가 나온다고 현 정권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게 아니다.

LH 사태의 본질을 뼈저리게 성찰하지 않는 한 근본 해법이 나올 수 없다. ‘공공’을 절대선(善)인 양 호도해온 유사(類似) 사회주의적 국정 운영이 임계점에 이르러 고름이 터진 것이다. 현실에서 사회주의가 예외 없이 실패한 데는 이유가 있다. 국민에게는 관념과 공상 속 유토피아를 주입해 마취시키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척하는 권력자들은 뒤에서 더 없이 욕망에 충실했던 탓이다. ‘내로남불’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평등교육을 외치면서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보내고, 다주택자를 악마라고 공격하면서 집을 여러 채 보유하는 그런 이율배반이다.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도 모자라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을 좌절과 분노에 빠뜨리고 심지어 바보로 만들었다. 이보다 더한 공직자의 중죄가 또 있을까 싶다. 동서고금에 ‘덜 나쁜 정부’는 있어도 ‘착한 정부’는 없었다. 그래서 ‘큰 정부’는 필시 큰 문제를 잉태한다. LH 사태 대책이랍시고 공직윤리를 다잡겠다지만, 도덕 재무장 운동처럼 허망한 게 없다. 선진국 공직자라고 욕망이 없을까. 이를 막는 건 도덕심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권력형 비리에는 봄바람인 정부에서 어떻게 아랫물이 절로 맑아지겠나.

LH를 환골탈태 혁신하겠다는 정부 대책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지금 필요한 건 LH의 대대적 기능 축소나 해체다. 돈 되는 개발정보가 집중되고, 공공 개발을 고수하는 한 정보 비대칭을 이용한 사익 추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게 인간 본성이자 집단의 행동원리다. 백 번의 다짐, 투기와의 전쟁 선포 이전에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반성과 성찰부터 해야 했다. 생선 꼬리가 썩고 있는데 머리인들 온전한지.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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