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씨 말랐는데…투기철퇴 선언 뒤 '광명·시흥' 문의 빗발 [현장+]

입력 2021-03-21 09:00   수정 2021-03-21 10:09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된 광명·시흥 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 정부가 '투기 철퇴'를 선언한 뒤 이곳 분위기는 오히려 인근 토지 매수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LH를 비롯한 공기업 관계자, 정치권 친인척까지 이곳의 땅을 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심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21일 광명·시흥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토지 매수 문의는 올 1월 대비 2배가량 늘어난 반면 매물은 씨가 말랐다. 'LH 사태'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가격 상승을 기대한 땅 주인들은 이미 내놨던 토지들까지 모두 거둬들였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됐다.

정부의 '엄정 조치'가 정작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단 방증이다. 현장에선 "투기를 잡는다? 대한민국에선 글렀다" "LH 직원들 투기는 이미 2010년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 이전부터의 일이다. 지금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같은 냉소적 반응만 되돌아왔다.
매물 잠수 탔는데 문의는 수두룩…"기대감만 커져"
지난 19일 <한경닷컴>이 직접 찾아간 광명·시흥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최근 토지 매입 문의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매물이 싹 들어가면서 매매 자체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시흥 매화동 A공인중개사는 "매물은 다 잠수 탔고, 문의는 말도 못 하게 늘었다. 그 전보다 거의 2배 수준"이라며 "이번에 LH 사태로 정치권, 공무원 너나 할 것 없이 투기했다고 하니 시흥 부동산 시장을 모르던 사람까지 연락이 쏟아진다"고 전했다.


시흥 장현동 B공인중개사는 "3기 신도시 예정지로 묶인 지역보다 그 주변 토지에 대한 매수 문의가 많다. 여전히 신도지 예정지에 대한 매수 문의가 있지만 조건을 들으면 그 주변으로 눈을 돌린다"면서 "신도시 예정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바보 아니면 안 산다. 5년 이상 발이 묶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흥시는 지난달 25일 과림동 금이동 무지내동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신규 지정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용도별로 일정 면적을 초과한 토지를 매입하려면 시·군·구청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은 후에도 2~5년 이용 의무기간으로 묶이게 된다.

이 때문에 최근 이 일대 3.3㎡(1평)당 토지 시세는 200만원선에 다다랐다. 이달 5일 매매된 도창동의 한 밭은 평당 약 195만원으로 팔렸다. 2017년 당시 도창동에서 거래된 밭의 평 단가가 150만원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년 만에 30%가 뛴 셈이다. 2017년 팔린 밭의 평 단가가 110만원가량이었던 매화동도 이달 7일에는 평당 약 150만원에 거래됐다.

이마저도 현 시세로 보기는 어렵다. A공인중개사는 "지금 일어나는 매매는 과거 계약하고 잔금을 치른 매물"이라며 "지금은 매물 자체가 없으니 '예전에 100만원 근방에 나왔는데 지금은 그 가격으로 못살 것'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명 옥길동 C공인중개사 또한 "광명·시흥지구든 그 주변 광명시든 매물이 없다. 신도시로 지정이 되면 전반적 도시기반시설이 좋아지기 때문에, 주변 지역까지 기대심리가 퍼진다"면서 "호가가 많이 올랐다. 매물은 없는데 문의만 수두룩하니 우리도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옥길동의 또 다른 D공인중개사도 "호가로 따지면 투기 의혹 나오기 전보다 10%가량 뛰었다. 신도시 지정 이후에 또 오른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부 투기 잡겠다는 건 오히려 홍보"…현지인들 "안 믿어"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연일 '부동산 투기 근절'을 지시했지만 정부 움직임이 매매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했다. 오히려 토지 가격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시흥 은행동 E공인중개사는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로 시흥시와 광명시 부동산 시장이 하강이 아니라 상승 기조에 들어섰다는 것"이라면서 "이미 '얼마나 오르면 투기까지 할까' 싶은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정부가 말하는 조사 등에 신뢰감이 가지 않으니 계속 땅값이 오를 거란 기대감만 커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솔직히 사람들 찾아와서 하나 같이 하는 말이 '투기는 잡아 봤자다'라는 거다. 개인도 실거래가 시스템을 통해서 5년치 거래 내역을 대조할 수 있고, 현장만 가봐도 실제 농지인지 투기 농지인지 가릴 수 있다"면서 "현장과 자료 조사만 해도 티가 나는 걸 여태 엄포만 놓고 있으니 정부가 말하는 투기 근절이 사실은 의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다"고 반문했다.

이어 "현실성 없는 정부 대응으로 땅 가격만 계속 오르는 것이다. 호재가 없는 땅까지도 정부의 홍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 생각도 비슷했다. 시흥 도창동에서 20여년 농사를 지었다는 강모씨(70)는 "지금 와서 뭘 어떻게 잡는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투기꾼들이 내려와 농지 살피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것만 20년"이라면서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러니 또 땅값 오른다는 말만 계속 나오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LH 직원 20~30명 잡아봤자 시장이 달라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외지인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는 풀어놓고, 투기 의혹 나오니 꾸짖는 것도 잘못됐다"며 "LH 같은 공기업 높은 사람들이 뒤로 땅 투기하는 건 예전부터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투기를 절대 잡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LH 직원 투기 의혹 땅으로 지목된 과림동의 한 토지 맞은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43)는 "땅값 오를 거란 기대감은 당연한 것 아니냐. 묶이지 않은 시흥 일대 땅값 오른다는 얘기는 주변에서 계속 들리더라"라면서 "신도시 예정지 현금 보상이 나오면 그 돈이 다시 주위로 분산되고 옆 토지를 사두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기 목적으로 산 농지는 딱 봐도 다르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노력만 했다면 투기꾼들 잡을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안 잡았다"고도 했다.

매화동 A공인중개사는 "이건 큰돈이 걸려있는 문제다. 정말 뿌리 깊은 투기"라면서 "LH 직원이나 관계자라도 정부의 엄포에 땅을 내놓지는 않는다. 지금 분위기론 차라리 직장을 그만두겠단 결정이 더 현실성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정부가 말하는 몇몇 LH 사례는 정말 마지막 투기판에 오른 초짜들이다. 이미 할 사람들은 2010년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 이전부터 샀다"면서 "대한민국에서 개인이 가진 재산을 억지로 팔라고 할 것인가. LH 직원 중 투자금이 적은 이들이 간간이 토지를 내놓을 순 있겠으나, 그 정도가 시장을 움직이는 규모는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