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world View] '인플레 압력' 눈감은 파월…신흥국 '긴축 공포' 커진다

입력 2021-03-23 17:55   수정 2021-03-24 00:18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만에 백신 보급이 이뤄지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기대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는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유일한 대처방안이 ‘격리’였던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 사태가 종료되면 세계 경제는 ‘불연계’에서 ‘연계’ 체제로 빠르게 이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되는 것은 지난해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많이 풀어 놓은 유동성을 전혀 흡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계 경제가 빠르게 회복될 경우 본격적으로 나타날 ‘숙취(hangover)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표적인 숙취 현상으로 인플레이션과 국채금리 상승 문제가 있다.

이 같은 문제가 가장 먼저 불거지고 있는 미국은 양대 경제수장인 재닛 옐런과 제롬 파월 전현직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긴급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약발은 종전만 못하다. Fed 설립 이후 역대 어느 의장보다 ‘시장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양대 경제수장이 이번에 잘 통하지 않는 것은 시장을 잘못 읽고 있기 때문이란 비판이 만만치 않다.
국채금리·물가 상승하는 ‘유동성 숙취’
무엇보다 시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추진된 금융완화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비용(공급) 면에선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다. 수요 면에서도 Fed가 내다보는 올해 성장률과 잠재 성장률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쿤의 법칙상 2∼3%포인트의 ‘인플레 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 금리도 그렇다. 미 재무부가 계획하고 있는 올해 국채 발행분은 2조8000억달러로 지난해 1조7000억달러를 크게 웃돈다. 하지만 Fed의 매입 계획분은 9000억달러 내외로 지난해 2조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잔여 물량은 시장에서 소화해야 하지만 국채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여건에서는 오히려 보유 국채를 내다 팔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일부의 비판대로 미국 양대 수장이 시장의 이런 여건을 과연 모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통화정책 면에서는 코로나 사태 직후보다 지금이 더 위험한 상황이다. 자산 거품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테이퍼링을 추진하다간 경기를 더 침체시키는 ‘에클스 실수’를,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금융완화를 지속하다간 자산 거품과 인플레이션을 조장해 또 다른 위기를 발생시키는 ‘그린스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Fed의 완화 기조 ‘트리플 버블’ 키우나
두 가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공존하는 여건에서 Fed가 어떤 길을 갈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목표와 우선순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Fed는 2012년부터 전통적 목표인 ‘물가 안정’과 함께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했다. 양대 책무가 충돌할 때는 후자에 우선순위를 둬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정부 때 그랬다.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고용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여건에서 물가와 국채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금융완화 기조를 변경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에도 Fed가 2013년 이후처럼 ‘트리플 버블(금융완화 버블+인플레이션 버블+테이퍼링 지연 버블)’을 키울 것이라는 시각이 고개를 드는 것도 ‘통화정책 불가역성’ 때문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와 국채 금리 상승으로 신흥국에 비상이 걸리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집중적으로 조달했던 달러 부채 만기까지 겹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따르면 2018년 2440억달러의 만기가 돌아온 달러 부채는 지난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평균 4000억달러 이상 돌아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나라별 성장률을 보면 코로나 백신을 자체 개발하고 얼마나 빨리 보급하느냐에 따라 ‘K’자형 양극화 구조가 심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도로 가장 빨리 경제 활동을 재개하고 백신을 개발해 보급한 중국 경제는 지난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세를 보인 데 이어 올해도 8% 내외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로 지난해 상반기까지 ‘방역 선진국’으로 높게 평가받았던 한국 경제는 그 후 자체 백신 개발과 보급이 늦어지면서 올해 성장률이 3.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다른 신흥국은 더 안 좋다. 최악의 경우 백신의 무기화까지 나타난다면 신흥국 경기는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신흥국의 미숙한 정책 대응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국채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한 이후 외자 이탈 조짐이 보이자 터키, 브라질 등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금리 인상으로 대처하고 있다. 국제금융공사(IIF)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 이후 신흥국에서 하루 평균 3억달러(약 3900억원) 규모의 외자가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보유액 늘면 금융위기 위험 줄어
1990년대 중남미 외채위기와 아시아 외환위기, 신흥국 금융위기 사례를 보면 외자 이탈 방지의 최선책은 ‘금리차 조정’보다 ‘외화를 충분히 확보하는 방안’이다.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외환보유액이 10억달러 증가하면 신흥국이 금융위기를 겪을 확률이 평균 50bp(1bp=0.01%포인트)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외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추진한 신흥국일수록 경기침체 간 ‘악순환(외자 이탈→금리 인상→실물경기 침체→추가 외자 이탈) 고리’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처럼 달러 부채 만기와 K자형 양극화가 겹치는 신흥국이 미국의 국채금리 상승에 대응해 성급하게 기준금리를 올리면 악순환 고리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다.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은 세 차례에 걸쳐 ‘테이퍼 탠트럼’(1차 2013년, 2차 2015년, 3차 2018년)을 겪었다. 테이퍼 탠트럼은 큰 경기를 앞두고 운동선수가 겪는 심리적인 불안을 표현하는 의학 용어로, Fed의 금리 인상 등에 따라 신흥국이 겪는 금융시장 불안을 의미한다. ‘긴축 발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이 활용하는 외환상환계수로 미국의 국채금리 상승 이후 신흥국에서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을 점검해 보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터키, 파키스탄,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필리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은 그다음 위험국이다.

금융위기 발생 고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는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로 미국과의 관계가 종전만 못하다. 오히려 경제 패권을 다투는 중국에 더 편향적이기 때문에 IMF의 구제금융 수혈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IMF의 최대 의결권을 여전히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와 국채금리 상승으로 대내외 금융시장에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차기 금융위기가 어느 국가에서 발생할 것인가’는 이런 각도에서 따져보면 어느 정도 감(感)을 잡을 수 있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과연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한국서 위기 발생할 가능성은
제2 외환위기는 없겠지만 국가·민간부채 ‘위험’ 수준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 경제와 관련된 위기설이 유독 많이 나왔다. 증시는 작년 3월, 7월, 9월 등 중요한 고비 때마다 ‘붕괴설’이 제기됐다. 가장 많이 불거진 경기 위기설은 ‘디플레이션 우려’로 집약된다. 코로나 사태 직후에는 ‘제2의 외환위기설’도 나돌았다. 지난 1년 내내 ‘국가부채 위기설’, ‘가계부채 위기설’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각종 위기설을 점검해 보면 증시 붕괴설은 가장 빗나갔다. 코로나 사태 직후 ‘1000선도 무너질 것’이라는 극단적 비관론이 나왔던 코스피지수는 그때부터 급등하기 시작해 우리 증시 역사상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3000’ 시대가 열렸다. 최근 들어 주춤하고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코스닥지수 상승률도 100%가 넘는다.

경기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심했던 디플레이션 위기설은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해 명목GDP를 실질GDP로 나눈 GDP디플레이터가 2019년 -0.7%에서 +1.3%로 돌아서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지난 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1%를 기록하며 1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서 미국처럼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제2의 외환위기설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1년 내내 외환보유액은 직접 보유한 ‘1선 외화’와 각종 통화 스와프 등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2선 외화’까지 합하면 5400억달러 이상을 유지해 왔다. 가장 넓은 개념의 캡티윤 방식으로 추정한 적정외환보유액인 3800억달러의 1.4배에 달하는 규모다.

우려되는 것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위기설은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더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 들어 증세를 뛰어넘는 재정 지출로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17년 36.1%에서 올해 52.5%, 2024년에는 62.2%로 급증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새로운 적정국가채무비율인 6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민간부채도 위험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신용갭은 16.9%로 해당 통계가 작성된 197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신용갭은 GDP 대비 민간신용비율이 장기 추세선에서 이탈한 정도로, 민간부채의 위험이 얼마나 누적됐는지를 평가하는 지표다. 이 수치가 2% 아래면 ‘정상’, 2∼10% 사이에 있으면 ‘주의’, 10%를 넘으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는 ‘경보’ 단계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 콘택트 초연결 사회가 앞당겨지는 시대에는 증시를 비롯한 모든 경제 분야에서 심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진다. 전문가일수록 예측이 틀리면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는 만큼 각종 위기설을 제시하는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처럼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와 국채금리 상승이 겹치는 어려운 국면일수록 더 그렇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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