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스티브 잡스의 이력서

입력 2021-03-25 18:07   수정 2021-03-26 00:18

그는 전공을 ‘영문학’으로 적고, 특기는 ‘컴퓨터 기술’이라고 썼다. 기술은 ‘컴퓨터와 계산기’, 관심 분야는 ‘전자기술과 디자인공학, 디지털’이라고 밝혔다. 고교 졸업 후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 휴렛팩커드(HP)도 명기했다. 운전면허는 ‘있다’, 차량 이용 여부는 ‘가능하지만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전화는 ‘없다’, 주소는 리드칼리지로 표기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18세 때인 1973년 작성한 이력서 내용이다. 주소에 대학 이름을 적은 것으로 봐 중퇴할 무렵에 쓴 것으로 보인다. 잡스의 첫 구직신청서인 이 문서는 최근 런던 경매에서 22만2400달러(약 2억5000만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잡스가 이듬해 게임·컴퓨터 회사 아타리에 취직할 때도 그의 이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컴퓨터 기술은 최고의 스펙이었다. 잡스를 채용한 아타리 창업자 놀란 부시넬은 “그의 이력서에 적힌 관심사와 열정, 창의력을 보고 뽑았다”고 말했다. 잡스가 상대방 눈을 보고 집중해서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펼치는 모습에 반했다는 것이다.

창의적 인재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부터 남다른 것 같다. 잡스와 동갑내기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하버드대 중퇴 즈음인 19세 때 항공기 부품업체 인턴에 지원했다. 그는 희망 임금란에 ‘OPEN(열려 있다)’이라고 적고, 재산이 1만5000달러라고 썼다. 지금 돈으로 8만달러(약 9000만 원)이니 역시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잘 적지 않는 몸무게까지 130파운드(약 58㎏)라고 쓰는 등 꼼꼼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줬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20세 때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에 보낸 이력서에 말풍선을 활용했다. 그 속에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카네기공대를 졸업했고, 지금은 뉴욕의 바퀴벌레 들끓는 아파트에서 다른 아파트로 이사하려 합니다’라는 자기소개글을 넣었다. 이 독특한 삽화 덕분에 바로 합격했다.

이들 역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이력서 분량이 매우 짧았다. ‘이력(履歷)’이란 말은 ‘신발 리(履)’와 ‘지날 력(歷)’을 합친 것으로,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가리킨다. 젊은이의 이력이 길 순 없다. 갈수록 빈칸을 채우며 스스로 경륜을 쌓는 과정이 인생이다. 우리나라 청년 구직자들도 마찬가지다. 시작이 미약할지라도 끝은 얼마든지 창대할 수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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