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빅테크들이 실리콘밸리 떠나는 이유

입력 2021-03-26 17:45   수정 2021-03-27 00:09

“오라클과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가 실리콘밸리를 떠난다고 했을 땐 그러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팔란티어가 본사를 덴버로 옮겼을 때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어요. 오라클 등은 범용 제품을 팔고 미국 전역에 고객과 지사가 있는 전통기업이지만 팔란티어는 범용 제품이 아니라 연구 중심의 빅데이터에 특화된 테크회사니까요.”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투자자는 최근 빅테크기업들의 ‘탈(脫)실리콘밸리’ 움직임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팔란티어는 2003년 실리콘밸리 내 팰로앨토에서 창업한 회사다.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 등 미국의 주요 정보부처와 함께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벌이며 빅데이터로 빈 라덴의 위치를 찾아낼 정도의 높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보유했다. 지난해 9월 뉴욕 증시에 상장한 첫날 158억달러(약 18조원)의 시가총액을 기록했다. 실리콘밸리가 낳은 대표적 테크기업인 이 회사가 지난해 말 본사를 콜로라도 덴버로 아예 옮긴 것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도 종종 “실리콘밸리를 떠나 본사를 텍사스나 네바다로 옮기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테슬라는 아직 실리콘밸리 본사를 옮기진 않았지만 텍사스에 추가 공장을 짓고 있다. 머스크 CEO는 이미 집과 그의 재단을 텍사스로 옮겼다.

미국의 일부 테크기업들이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팔란티어와 테슬라 CEO의 정치적 성향과 관계가 있다. 캘리포니아를 장악한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많다.

첫째 캘리포니아 정부와 의회가 만들어낸 반(反)기업 환경이다. 캘리포니아의 환경, 고용 등의 규제는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꼽힌다. 머스크 CEO는 “규제는 스타트업 창업을 억누르고 독점이나 과점을 선호하게 된다”며 “주정부는 기업 활동에 방해가 안 되게 그냥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둘째는 세금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개인소득세율만 최고 13.3%로 연방정부의 소득세까지 합하면 테크회사 직원들은 소득의 절반 이상을 소득세로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캘리포니아는 최고세율을 16.8%로 높이는 안을 추진했다. 캘리포니아주의 법인세율은 8.84%로 미국에서 최상위권이다. 반면 텍사스는 주 단위의 개인소득세와 법인세가 없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 본사와 지사를 두고 있는 베어로보틱스의 하정우 대표는 “기업이 텍사스로 본사를 이전하면 개인소득세가 없어지고 집값도 8분의 1 수준으로 싸지기 때문에 그에 맞는 연봉을 책정해도 직원들이 이를 받아들인다”며 “텍사스로 본사를 옮기면 기업들은 운영비를 20%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구글 애플 등과 같은 미국 기업들은 같은 직급이라도 지역별 임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셋째는 실리콘밸리의 내적인 문제다. 이 지역의 집값과 물가 수준이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랐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샌프란시스코의 원룸 평균 월세는 3700달러(약 400만원) 정도여서 구글이나 애플 직원들도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물가도 뉴욕보다 비싸다. 여기에 코로나19 등으로 재택근무가 자리잡자 실리콘밸리로 출퇴근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는 투자자들에 보낸 메시지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은 사회가 어떻게 조직돼야 하는지, 정의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한다”며 “기술 부문의 가치와 정의에서도 실리콘밸리의 이질적인 스타트업 문화와는 공유할 것이 점점 더 없어진다”고 썼다.

현지 언론들도 정치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패권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이런 추세라면 언젠가 실리콘밸리의 ‘세계의 기술 수도’ 지위를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유력 매체인 샌프란시스코 클로니클은 “혁신가들이 실리콘밸리에 온 이유는 낮은 장벽과 개방성에 있는데, 지금은 각종 규제 등을 더 만들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런 장벽을 낮추고 규제를 혁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인구 120년만에 감소
지난해 캘리포니아의 인구가 1900년 이후 12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캘리포니아 인구는 7만 명 줄었다. 캘리포니아 인구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진 매년 30만 명씩 증가했다. 그러다 2019년 정체기를 거친 뒤 지난해 감소세로 전환한 것이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에서 다른 주로 빠져나간 주민만 20만3414명에 달한다. 미국 전체 50개 주 가운데 가장 많았다. 캘리포니아에서 나온 주민들은 대부분 텍사스나 네바다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텍사스로 거처를 옮긴 미국인은 36만7215명으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많았다. 네바다로 유입된 인구도 5만2815명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결과는 코로나19로 해외 이민자들의 유입이 크게 줄어든 데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캘리포니아를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크리스천 사이언티스트 모니터는 “높은 세율과 비싼 집값으로 젊은 층이 살기 힘들고 이로 인해 고령층 위주로 남게 된 것이 캘리포니아의 인구 감소 원인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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