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참, 불참, 불참… 北인권에 입 꾹 다문 한국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입력 2021-03-27 11:00   수정 2021-03-27 11:46

2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 제46차 유엔 인권이사회의 마지막 날 전세계 43개국이 이름을 올린 결의안이 채택됩니다. 북한 정권에 인권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북한 인권결의안입니다.

북한 인권결의안은 2003년부터 19년 동안 매년 빠짐없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됐습니다. 올해 결의안에는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명단에 ‘자타공인’ 민주주의 국가가 하나 빠졌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남북 관계 위해 北인권엔 눈감은 '진보정부'

북한 인권결의안은 연초에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되면 같은해 연말 제3위원회를 거쳐 총회에서 통과됩니다. 처음 결의안이 채택된 2003년과 그 이듬해에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인권위원회(CHR)에서만 채택됐습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총회에서까지 채택되는 것으로 사실상 ‘격상’됩니다.

한국은 사실 이 결의안이 유엔에서 처음 채택됐을 때부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2003~2005년 결의안 채택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합니다. 그러다 2006년 5년 임기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엔 총회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집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앞두고 북한 인권에 눈감는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반 총장이 선출된 이듬해 노무현 정부는 다시 표결에서 기권합니다.

2007년 결의안 표결에 기권한 것은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비화된 적이 있습니다.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2016년 출간한 회고록에 “2007년 11월 김만복 국정원장이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의 자문을 구하자고 제안했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문을 구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입니다.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결의안에 찬성할지 여부를 북한 정권에 물었다는 내용이라 파장은 컸습니다. 논란 초기 문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외교부는 찬성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통일부는 기권하자는 입장이었는데, 대부분 통일부의 의견을 지지했다”며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밝힙니다. 양측의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이 논란은 이듬해 대선이 끝나고 흐지부지됩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선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은 11년 연속 북한 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립니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첫해와 그 이듬해에는 공동제안국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부터 “한반도 정세 등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공동제안국에서 빠집니다. 올해까지 3년 연속입니다.

지난해 12월 세계 47개 국제인권단체는 문 대통령에게 “북한 인권의 핵심 당사국인 한국이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복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대신 외교부 당국자는 결의안 공동제안국 불참 결정에 앞서 기자들에게 “컨센서스에 동참한데 의미 부여를 해달라”고 말합니다. 북한 인권결의안은 원래 회원국 표결로 진행됐지만, 2016년부터는 가만히 있으면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컨센서스’ 방식으로 채택됩니다. 다시 말해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 한 통과되는 것인데, 한국은 "우리는 컨센서스에는 동참하지 않았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죠.
◆처음으로 국군포로도 언급됐지만...

올해 결의안에는 처음으로 들어간 내용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군포로 문제입니다. 결의안에는 “미송환된 북한 내 전쟁 포로들 및 그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인권을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는 문장이 포함됩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400여명의 국군 포로가 북한에 생존해 있었습니다. 당시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북한이 전쟁 중 억류한 국군포로를 최북단의 탄광 등지로 보내 종신 강제 노역형을 부과했다고 기술합니다.

올해 추가된 새로운 내용은 또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국경 및 다른 지역에서 사망을 초래할 수 있거나 다른 종류의 과잉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를 촉구한다”는 문장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문장이 지난해 9월 서해상 공무원 사살 사건을 지칭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올해 결의안은 북한의 코로나19 대처가 필요와 비례 원칙, 비차별성, 한시성, 국제법의 엄격한 준수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지난해 해수부 공무원 이모씨 피살 사건에 대한 간접적 비판이자 재발 방지 촉구”라고 말합니다.

국제사회는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에 있어서만 입을 꾹 다무는 한국을 우려스럽게 바라봅니다. 북한 주민이 헌법상 자국민으로 규정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올해 결의안에는 국군 포로, 서해상 피살 공무원 문제까지 언급됐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마이클 그린 전 미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역사는 북한 인권에 대한 현재 한국 정부의 접근법을 좋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버타 코언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이 (공동제안국에) 빠지면 북한의 인권 탄압 관행에 반대하는 국가들의 결속을 허문다”고 비판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지난 18일 한·미 ‘2+2(외교·국방 장관) 회담’ 공동성명에서도 빠졌습니다. 그에 바로 앞서 열린 미·일 2+2 회담 공동성명에는 포함됐는데 말이죠. 남북 관계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헌법이 우리 국민이라 말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에 눈을 감은 대가가 국제사회 고립이라는 대가로 돌아오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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