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주의 수난…국채 공포 줄자 ‘아케고스 충격’ [조재길의 지금 뉴욕에선]

입력 2021-03-30 07:54   수정 2021-04-13 00:02

세계 금융 시장은 아직도 1998년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고위험 고수익’ 전략을 추구했던 LTCM은 러시아 모라토리엄(지급 유예) 등 예기치 못한 이벤트가 발생하자 파산했습니다. 이 펀드에 돈을 빌려줬던 대형 은행들이 줄줄이 충격을 받았고 미 중앙은행(Fed)은 황급히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했습니다.

비슷한 일은 올 들어서도 발생했습니다. 뉴욕 투자회사인 멜빈 캐피탈은 게임용품 유통업체인 게임스톱 주식을 대량 공매도하다 1월에만 총 자산의 53%를 까먹었습니다. 한달동안 잃은 돈이 70억달러가 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아케고스 캐피탈 매니지먼트’ 사태입니다. 아직 파산 선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대형 은행들이 또 다시 줄줄이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LTCM 이후 최악의 헤지펀드 사태라는 평가가 월가에서 나옵니다.

LTCM과 멜빈 캐피탈, 아케고스 등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규모 차입을 바탕으로 지나친 고수익 전략을 추구하면서도 헤징(위험회피)엔 소홀했다는 겁니다. 운 좋게 승리를 이어가더라도 결국 파멸로 귀결되는 도박에 다름 아닙니다.
▶아케고스는 어떤 회사인가
아케고스는 부유층 재산을 관리해주는 패밀리 오피스 성격의 헤지펀드입니다. 정확한 펀드 규모가 공개되지 않는 등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맨해튼 뉴욕타임스 본사 건물에 입주해 있었는데, 지금은 홈페이지도 접속이 되지 않습니다.

이 헤지펀드를 설립한 사람은 빌 황(한국 이름 황성국)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목회자인 부모님을 따라 이주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의 명문 UCLA를 졸업하고 카네기멜론대에서 MBA(경영학석사) 학위를 땄습니다.

이후 한국 현대증권과 홍콩 페레그린증권의 뉴욕법인에서 기관 영업을 담당했습니다. 페레그린증권은 1998년 인도네시아 고위험 채권 투자 실패로 파산한 회사입니다.

뉴욕에서 일하던 황은 월가의 주목을 받던 타이어펀드의 대표이자 투자가 줄리언 로버트슨을 만난 뒤 이 펀드로 옮겼습니다. 이후 2001년 독립해 또 다른 헤지펀드인 타이거아시아펀드를 만들었고 한국 일본 등에 투자해 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2012년엔 중국은행 등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6000만달러를 배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타이거아시아펀드를 폐쇄하고 만든 게 아케고스입니다. 패밀리오피스로선 이례적으로 많은 100억달러 이상을 운용했지만, 패밀리오피스라는 점 때문에 미 SEC(증권거래위원회) 정기 보고 등 규제를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황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하나님이 월스트리트를 포함해 모든 걸 지배한다” “1주일에 한두시간씩 성경을 읽어도 매년 한권씩 읽을 수 있다. 밥 먹는 것처럼 성경을 읽어야 한다” 등의 얘기를 했습니다. 회사 안에선 정기적으로 ‘성경 읽기’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아케고스가 파산 위기에 처한 배경은
지난주 금요일인 26일 아케고스는 결정타를 맞았습니다. 미디어주인 바이어컴CBS와 디스커버리, 디즈니, 또 중국계 주식예탁증서(ADR)인 바이두, 텐센트 뮤직 엔터테인트먼트, VIP숍 홀딩스, GSX 테크듀 등의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블록딜 등의 영향으로 300억달러 이상 매도 주문이 쏟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날 진행된 장내외 블록딜만 190억달러에 달했습니다.



아케고스 펀드가 여러 은행에서 돈을 빌려 이들 주식을 집중 매수해 놨는데, 주가가 떨어지면서 마진콜(원금 손실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경우 추가 증거금을 납부하도록 요구하는 절차)을 당했습니다.

이를 갚지 못하자 주식을 담보로 잡았던 은행들이 아케고스의 보유 주식을 일제히 헐값에 처분했다는 겁니다.


아케고스는 5배 이상의 레버리지(차입)를 일으켜 저평가된 주식 현물을 사고 고평가된 주식 선물을 파는 롱쇼트 전략을 써왔습니다. 주가가 급락한 주식들에 대해선 일관된 롱(long·현물 매수) 포지션을 취했다고 합니다. 미·중 관계 악화에도 중국계 기술기업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하지만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미 SEC에서 중국 ADR의 상장 폐지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입니다.

아케고스는 투자 주식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큰 손실을 봤고, 마진콜에 따른 반대 매매로 원금을 대부분 까먹게 됐습니다. 아케고스가 이날 잃은 돈은 100억달러 이상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지난주 금요일 당일엔 뉴욕증시 여파는 크지는 않았습니다. 기술주 위주인 나스닥도 전체적으로 1.2% 상승했습니다.
▶어떤 은행들이 아케고스 사태에 연루돼 있나
상당히 많은데, 직접 밝힌 은행은 많지 않습니다.

일단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는 “미국 자회사가 20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고 공개했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돼 있는 노무라 주가는 이날 14.07% 급락한 주당 5.68달러로 마감했습니다.

스위스계인 크레디스위스 역시 “미 헤지펀드와의 거래로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은행의 뉴욕 주가도 11.5% 급락했습니다.

미국계 은행들이 입은 손실은 훨씬 더 클텐데,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아케고스와 거래했던 대표적인 은행들로 꼽힙니다. 미 최대 은행인 JP모건의 연계도 드러나면서 이 은행 주가 역시 이날 1.6% 떨어졌습니다.

도이치뱅크와 UBS 등 다른 유럽계 은행들의 주가 역시 일제히 약세를 보였습니다. 아케고스 파장이 금융권 전체로 번지고 있는 겁니다.

SEC도 이날 “아케고스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월가에선 이번 사태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지난주 일부 주가가 급락했는데도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이제서야 미스터리가 풀렸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예고된 재앙’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지나친 고수익 전략을 추구했다는 겁니다. 알리안츠의 수석 경제 자문인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자신의 트위터에 “대규모 레버리지(차입)과 너무 집중된 포지션, 과도한 파생상품 등이 엮여 있다”며 “지금까지는 일부 종목에만 파장이 미쳤으나 향후 어떻게 전염될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너지펀더스의 트레이더인 로스 헨드릭스는 “(대규모 차입을 통해 투자했던) 아케고스의 마진콜이 주요 기업 주가를 일주일만에 50% 급락시켰다”며 “현재 8000억달러나 되는 기록적인 수준의 차입 거래가 이뤄지고 뉴욕증시에서 일이 잘못된다면 결과가 어떨까”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일부 주가의 급락을 저가 매수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습니다. 게임스톱 급등락 사태를 유발했던 개인 투자자들의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아케고스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LTCM만 해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헤지펀드였는데, 아케고스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펀드이기 때문입니다.

프린스펄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시마 샤 수석 전략가는 “이번 마진콜 주가 하락에 누가 관여됐는지 불확실했기 때문에 광범위한 매도세가 발생했다”며 “하지만 이런 시장 충격은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스포크 투자그룹은 “아케고스 사태가 시장 전체로 번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투자자들은 게임스톱이나 아케고스와 같은 이변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앞으로 유사 사례가 반복될 것으로 예상한 겁니다.
▶29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엔 얼마나 여파 미쳤나
역시 나스닥 시장은 약세를 보였습니다. 나스닥 지수는 0.6% 떨어진 13,059.65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다우 지수는 금융주 부진에도 불구하고 0.3% 오른 33,171.37로 마감했습니다. 사상 최고치입니다.

블록딜 거래 대상이었던 바이어컴CBS와 디스커버리, 디즈니 주가는 이날 각각 6.68%, 1.6%, 0.58% 하락했습니다. 중국계인 GSX 테크는 18.53%, VIP숍 홀딩스는 8.72%, 바이두는 1.87% 또 급락했습니다.

다만 텐센트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중국 본사에서 급히 1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1.19% 상승 마감했습니다.

이날 빅테크(대형 기술주) 중에선 애플(0.15%) 아마존(0.78%) 알파벳(1.04%) 페이스북(2.76%) 등이 강세였지만 테슬라(-1.2%) 마이크로소프트(-0.52%) 등의 주가는 주춤했습니다. 기술주 전반적으로는 약세를 보였는데, 아케고스 사태의 여파가 있었지만 국채 금리가 또 급등한 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입니다.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날 연 1.73%로, 전 영업일(연 1.67%) 대비 6bp(1bp=0.01%포인트) 뛰었습니다. 지난 19일의 올해 최고치(연 1.74%)에 육박했습니다. 30년 만기 금리도 연 2.37%에서 2.43%로 올랐습니다.

다만 경기 호조에 따른 기대가 커졌고, 국채 금리 상승에 대한 내성이 많이 생기면서 낙폭을 제한했습니다.

수에즈 운하 재개에 따른 공급망 위기가 다소 수그러들면서, 필수소비재 등 경기 순환주에 대한 기대도 커졌습니다.
▶인프라 투자 계획 발표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접종 계획을 또 내놨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 성인의 90%가 4월 19일까지 코로나 접종 자격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다수의 예상보다도 빠른 속도입니다.

뉴욕주는 백신 대상을 오는 30일부터 30세 이상으로, 다음달 6일부터 16세 이상 모든 주민으로 확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백신 여유분을 확보했다는 겁니다.

이날 존스홉킨스대가 미국의 신규 코로나 확진자 수가 주간 평균 6만3239명으로, 전주 대비 16% 증가했다고 밝혔으나 경제 재개 기대감이 압도했습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한 번만 접종해도 80%의 예방 효과(2차 접종하면 90%)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투자 심리를 지지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31일(수) 피츠버그로 날아가 3조~4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내놓습니다. 인프라 및 보건의료, 교육 관련 투자 규모를 발표할 예정인데, 이를 충당할 증세안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시장에선 바이든의 인프라 투자 계획이 100% 실현될 것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상원에서 절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문사인 바이털 날리지의 애덤 크리사풀리 창업자는 CNBC 인터뷰에서 “민주당과 백악관이 수 개월 내 인프라 법안을 통과시키려 노력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원하는 수준을 다 얻어내긴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월가에선 4월 증시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대형 투자리서치 회사인 CFRA의 샘 스토벌 최고 투자 전략가는 “역사적으로 3월 주가가 하락했을 때마다 4월엔 큰 폭으로 반등했다”며 “다음달 1분기 기업 실적이 줄줄이 나오면 시장 분위기가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올 1분기 기업 실적은 1년 전 대비 15%가량 좋아질 것이란 게 CFRA 추산입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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