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돌팔이 경제학'에 멍든 경제

입력 2021-03-31 17:53   수정 2021-04-01 00:29

“전문의를 고르면 질병도 고르게 된다.” 미드 ‘닥터 하우스’의 기억에 남은 대사다. 환자가 지레짐작으로 특정 전문의를 찾아가면 그 분야 진단이 나온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가 총체적 난국에 처한 것은 LH 사태 이전에 쌓일 대로 쌓인 고용 참사, 부동산 지옥, 민생 나락 등 경제 실정(失政) 때문이다. 그 원인의 태반은 ‘경제 주치의’를 실력이 아닌, 연고를 따져 고른 데 있다. 실질적 경제수장인 청와대 정책실장에 고집스레 기업·시장과 각을 세워온 ‘저격수’만 기용했다.

“살아봐서 아는데 모두가 강남 살 필요는 없다”던 자산가 장하성, “부동산은 끝났다”던 부동산 필패론자 김수현, 그리고 재벌 저격수에서 ‘세입자 저격수’로 전락한 김상조. 거시경제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교수 3인방’이 바통을 주고받았다. 만기친람의 ‘청와대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장관들은 들러리일 뿐이다.

경제는 변화무쌍한 생물이다. 세계 10위권 규모는 서생들이 주무르기엔 너무 커졌다. 이념·진영보다 한참 위에 국민의 ‘먹고사니즘’이 있다. 국가경제 운용은 누군가를 때려잡는 식으론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재벌을 손보고, 시장과 싸우는 이들에게 경제수장을 맡겼으니 실패를 예약한 셈이다. 게다가 실력도 없으면서 이젠 도덕성까지 들통났다.

4년 내내 한 것이라곤 경제실험과 통계분식뿐이다. 마차가 말을 끄는 소득주도성장, 시장 무지(無知)를 드러낸 25번의 부동산 대책, 종교원리주의 같은 탈원전, 말로만 푼 신산업 족쇄, 스토커 뺨치는 기업 규제에다 공무원과 세금알바 늘리기 말고 뭐가 더 있나. 부작용이 차고 넘쳐도 못 본 체하고, ‘올바른 방향’ ‘나아지고 있다’는 뇌피셜 주문(呪文)만 외우다 말았다. 국민 생업을 건드리고 안식처까지 들쑤셨으니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역대 정권은 경제만큼은 최고 관료에게 맡겼다. 전두환 정부의 김재익, 김대중 정부의 이규성, 노무현 정부의 이헌재, 이명박 정부의 윤증현 등은 실력과 카리스마까지 갖췄다. 그러나 문 정부는 관료를 철저히 배격했다. ‘우리 편’이 아니니까.

여기에는 집권세력의 왜곡·편향된 경제관(觀)이 깔려 있다. 그들에게 경제는 정치의 하위변수요, 사회변혁의 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 부동산도 정치, 일자리도 정치, 재정도 정치로 치달았다. “정치가 경제를 삼켜버렸다”는 비판은 문 정부의 특질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집권세력의 핵심인 86그룹과 좌파 경제학자 중에는 아직도 마르크스의 미몽에 빠져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산권 붕괴 후 30년이 흘렀건만 세상 변화에 눈감고, 노동가치설로 경제를 바라보니 파괴적 혁신, 기업가 정신의 의미를 이해 못한다. 대기업은 만악의 근원, 이윤은 노동착취 결과, 기업인은 지대추구자로 여긴다. 그토록 노조편향과 반기업 입법이 쏟아지는 배경일 것이다.

경제정책을 담당한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대개 1984년 복직한 변형윤 교수와 맥이 닿는다. 1980년대 중·후반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거나 석·박사를 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당시 조교가 소주성 설계자인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고 그 후배들이 김상조, 조성욱 공정위원장,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이호승 신임 정책실장,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다.

문 정부는 집권 기간의 경제적 소명과는 철저히 반대로 갔다. 4차 산업혁명 등 디지털 대전환의 쓰나미에서 버티기 위해 기초를 튼튼히 하고 고령화, 고비용·저효율, 사회갈등 등 만성질환을 수술할 외과전문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좁은 인재풀을 고집하고, 정치를 맨 위에 올려놨으니 이 지경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정책실장·경제수석에 관료를 기용했다. 하지만 대대적 인적 쇄신과 정책 전환을 기대한다면 꿈 깨는 편이 낫다. ‘그 나물에 그 밥’으론 소용없다. 더 걱정스런 것은 경제학자들이 퇴장해도 거대여당의 얼치기 경제전문가들이 설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남은 1년여 동안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 한스 로슬링의 조언을 들려주고 싶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팩트풀니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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