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아름다워, 시리게 슬픈 '북유럽 모나리자'

입력 2021-04-01 17:16   수정 2021-04-02 03:01


영국의 신경생물학자 세미르 제키는 명화를 감상하는 사람의 뇌에서 ‘행복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도파민 분비가 촉진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걸작 ‘비너스의 탄생’을 관찰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뇌에서 도파민 분비가 증가했다는 것. 세기의 명화 중 어떤 작품이 도파민 분비를 많이 촉진할 수 있을까. 아마도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걸작 ‘진주 귀고리 소녀’가 영광의 1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네덜란드의 국보급인 이 작품은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찬사를 받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06년 네덜란드 일간지 트라우호가 뽑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그림 속 미녀는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아름다움의 비밀을 풀어보자.<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첫째, 소녀는 얼굴을 왼쪽 방향으로 돌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누군가를 바라보는 반측면(3/4 측면) 자세를 취했다. 정면과 측면의 장점을 결합한 반측면 자세는 인체 동세에 변화를 주고 생동감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얼짱 각도가 나온다. 얼굴선이 갸름해 보이고, 눈은 커 보이며, 이마에서 코로 이어지는 선이 또렷해지면서 얼굴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난다.

둘째, 파란색 터번을 머리에 두른 소녀의 이국적 패션이 서양미와 동양미의 조화를 이루며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낳았다. 16~18세기 유럽에서 이국적 취향이 유행하면서 이슬람 복식 문화를 상징하는 터키풍 의상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터번에 사용된 울트라마린 물감도 신비한 이국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천연 보석인 라피스 라줄리(청금석) 분말로 제조한 울트라마린은 황금보다 비싼 물감이었다. 이 작품을 소장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최고 품질의 아프가니스탄산 라피스 라줄리로 만든 파란색 안료가 소녀의 터번에 사용됐다. 신비한 빛을 발하는 파란색 터번과 노란 색조의 스카프, 흰색 옷깃으로 포인트를 준 황갈색 겉옷의 보색 대비 조합이 서양미와 동양미가 혼합된 복합적 아름다움을 끌어냈다.

셋째, 투명하게 빛나는 물방울 모양의 진주귀고리는 소녀의 맑고 커다란 눈망울과 어우러져 청순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진주는 순수, 정결, 고귀함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소녀의 청순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진주알의 크기와 광택, 귀에 걸 수 있는 후크(걸이)가 없다는 점이 일부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천문학자 빈센트 아이케는 젊은 여성이 착용하기엔 진주알이 비현실적으로 크고,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을 반사하는 방식이 실제 진주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진주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학예실은 소녀의 귀고리는 베네치아산 유리를 진주처럼 가공해 만든 값싼 수제품이라고 밝혔다. 양식 진주가 없었던 17세기에 천연 진주는 무척 희귀하고 값비싼 보석으로 왕족과 귀족, 극소수의 부자들만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소녀의 귀고리는 대형 진주가 확실하며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특별히 사랑했던 페르메이르가 희귀한 진주를 선택했다고 해석한 학자들도 있다. 소녀의 귀고리가 진짜인지 모조품인지에 관한 학자들의 논란은 그림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넷째, 페르메이르 특유의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독창적 명암법으로 관능미를 강조했다. 화면 왼쪽에서 스며드는 투명한 빛이 파란색 터번과 해맑은 눈망울, 약간 벌린 붉은 입술, 진주알에 반사돼 눈부시게 반짝인다. 특히 도톰한 아랫입술에 닿은 빛은 마치 립글로스를 바른 것처럼 촉촉한 윤기를 더해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키스하고 싶은 입술’의 관능미와 청순미가 결합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탄생했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미술과 문학, 영화, 대중문화에도 많은 영감을 줬다. 미국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장편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국 피터 웨버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돼 큰 성공을 거뒀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가바사와 시온은 “도파민은 목표나 계획을 세울 때부터 분비된다. 목표를 세울 때 마음이 들뜨고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은 이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보자. 행복의 도파민이 많이 분비될 수 있도록.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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