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디지털 敗戰' 자성하는 일본

입력 2021-04-01 17:53   수정 2021-04-09 17:26

벚꽃이 만발한 지금, 한국은 선거국면이다. 여·야 정치권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그다음은 내년 3월 대선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격돌이 예상된다. 이즈음 일본에서는 ‘디지털 패전(敗戰)’을 자성하는 목소리가 높다. 《왜 일본은 디지털 정부에서 실패의 연속인가》(닛케이컴퓨터 간). 지난 20년간 매년 1조엔(약 11조원)을 퍼부었음에도 코로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대한 처절한 반성문이다. 코로나 대응을 놓고 정부가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는 한국과 행정 DX(디지털 변혁)의 실패를 되돌아보는 일본이 대조를 이룬다.

“양질의 통신 인프라도, IT(정보기술)전략도 제 역할을 못 했다. 이게 패전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히라이 다쿠야 디지털개혁상은 고개를 떨군다. 그는 패전의 원인을 ‘공급자 관점’의 디지털화에서 찾았다. ‘국민 관점’의 디지털화가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국민이 행정 서비스를 원할 때 어느 부처에서 제공하는지 왜 알아야 하나. 그런 부담 자체가 UI(사용자환경)·UX(사용자경험)를 악화시키는 짓이다.” 코로나 감염자 정보관리시스템도, 접촉 확인 앱도, 의료기관과 행정 간 정보공유시스템도, 보조금 온라인신청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근원이 여기에 있다는 맹성이다.

‘디지털 패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지시가 내려가야 움직이는 ‘수직의 벽’, 칸막이로 협조가 안 되는 ‘수평의 벽’이 문제란 것이다. “디지털화만으론 안된다. 규제개혁을 한꺼번에 추진해야 한다”, “5년 안에 ‘AI(인공지능) 정부’로 간다는 목표를 갖고 서둘러야 한다”는 긴급 제안도 나왔다. 관료의 ‘IT 문맹’ 한탄도 반성문에 담겼다. “코로나 대책 사령탑의 한 축인 후생노동성 공무원이면 간단한 프로그램은 짤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인재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일본의 ‘디지털청’ 창설 구상이 나온 배경이다. 국가 정보시스템을 총괄하는 500명 규모의 별동대다. 총리 직속이다. 이 얘기를 전하면 ‘큰 정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에 질 수 있나. 우리도 만들자”고 나올지 모르겠다. 본질은 따로 있다. 디지털청 직원의 20%를 민간에서 채용하고,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짠다는 계획이다. 민간 인재 수혈로 관료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디지털 변혁을 꾀하겠다는 얘기다.

디지털 패전을 맛봤다는 일본이 개혁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주문과 기대는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관’이 아니라 ‘국민’이 주어가 되는 디지털화를 추진하라.” 행정서비스는 독점이기 때문에 공급자 편의성으로 가기 쉬운 구조를 깨라는 주문이다. “행정 DX의 핵심은 현장의 디지털화다.” 지방자치단체 위에 군림하는 중앙정부에 던지는 충고다. “자율분산형으로 가라.” 누구라도 행정시스템 만들기에 참여해 혁신을 일으키게 하라는 촉구다.

또 있다. “‘AI-레디(ready)’가 돼야 한다.” 처음부터 AI 활용이 가능한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라는 주장이다. “정부 내 IT전문직의 커리어 패스를 마련하라.” 영국 정부는 IT전문직과 요구되는 능력을 정의해 인재 채용과 육성에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는 IT인재가 정부와 기업을 자유롭게 오가는 ‘회전문’이 통한다. 창업을 경험한 IT인재가 공무원으로 활약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은 왜 못 하느냐는 문제 제기다. 한국도 일본과 다를 바 없다.

다시 히라이 디지털개혁상 얘기로 돌아온다. 그는 ‘서비스 정부’를 넘어 ‘스타트업 정부’를 부르짖고 있다. 한국이 전자정부에서 앞서간다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장담할 수 없다. 코로나 상황에서 운 좋게 먹힌 몇 가지 성공담이 언제까지 통하리란 보장은 더욱 없다. 전자정부와 규제개혁이 같이 가야 한다는 숙제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 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웃게 될까.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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