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비판에도 北 인권 침묵하는 韓

입력 2021-04-02 15:31   수정 2021-04-03 00:38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 인권이 핵심 아젠다로 떠올랐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의회에서도 이런 기류가 뚜렷해졌다. 북한 인권문제에 무관심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미 국무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권을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리사 피터슨 국무부 인권담당차관보 대행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인권 상황은 세계 최악 중 하나”라며 ‘지독한 인권 침해’에 우려를 나타냈다.

국무부는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 보고서부터 ‘지독한 인권 침해’란 표현을 삭제했다가 이번에 다시 포함시켰다. 피터슨 대행은 “북한 정부가 책임지도록 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 대북 정책에서 인권은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지난달 23일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 결의 때 3년 만에 공동 제안국으로 복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한 것과는 정반대 모습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7, 18일 방한했을 땐 “북한의 권위주의 정권이 자국민들을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학대하고 있다”며 북한의 인권 탄압을 정면비판했다.

미 의회도 북한 인권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원 산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임명을 촉구했다. 북한인권특사 자리는 2004년 북한인권법 제정과 함께 신설됐지만 트럼프 행정부 4년 내내 공석이었다. 이 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제임스 맥거번 민주당·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은 서한에서 북한의 인권 탄압을 지적하면서 “북한 인권 증진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으로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인권문제를 신경쓰지 않았다. 북핵 협상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 게 한 이유였다. 다른 나라 일에서 웬만하면 손을 떼려는 ‘트럼프식 고립주의’도 한몫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을 외교정책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중국의 신장위구르족 인권 탄압과 홍콩 민주주의 억압, 미얀마 군부의 시위대 학살 등 세계 인권 문제에 빠짐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권위주의에 맞서 ‘전 세계 민주주의 수호’를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 외교’는 바이든 행정부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 땐 3년 연속 공동 제안국 명단에서 빠졌다. 이 결의안엔 국군 포로와 후손들에 대한 북한의 인권 탄압 문제가 처음으로 적시됐다. 세계 47개 인권단체는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이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문제에서 저자세를 보인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북한인권단체의 대북전단을 북한이 문제 삼자 ‘김여정 하명법’이란 비난에도 대북전단금지법을 속전속결식으로 처리했다.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도, 심지어 서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했을 때도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렇다고 남북 관계가 개선되지도 않았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오히려 더 커졌다. 워싱턴에선 문재인 정부를 보는 시선이 차가워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에 발탁된 정 박은 지난 1월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 자격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길게 드리운 북한 그림자’ 보고서를 썼다. 그는 보고서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남북화해라는 아직 이루지 못한 짝사랑 같은 약속을 위해 국내의 자유주의 아젠다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북한으로의 자유로운 정보 유입을 늘리는 것은 미국의 우선순위”라며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톰 랜토스 위원회는 대북전단금지법을 다룰 청문회를 이달 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를 상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는 “북한에 대해 ‘인권도 무시하는데 무슨 비핵화를 하겠느냐’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북한 인권문제에서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워싱턴에서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hohoboy@hankyung.com
유엔도 "북한 인권 다뤄야" 촉구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인권문제에 지금보다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은 유엔에서도 나오고 있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달 10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인권문제도 같이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대화를 위해 보편적 권리인 인권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반인 2017년과 2018년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다.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은 2017년 6월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조를 알고 있다”고 했다.

외교부는 그에 앞서 국정감사 업무보고 자료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유엔 등 국제사회와 함께 분명한 메시지를 발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2019년부터 3년 연속 공동 제안국에서 빠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산하 북한인권특위 회의 횟수도 박근혜 정부(2013~2016년) 때 21회에서 문재인 정부(2017~2020년) 땐 8회로 줄었다.

2019년과 2020년엔 회의 횟수가 각각 1회에 그쳐 ‘식물위원회’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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