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민둥산 태양광'

입력 2021-04-05 17:44   수정 2021-04-06 00:14

한 남자가 황폐한 고원지대에 나무를 심었다. 양떼를 돌보는 틈틈이 하루 100그루씩 떡갈나무를 심었다. 3년간 10만 그루가 넘었다. 이후 40년 동안 그가 심은 나무 덕분에 황무지는 푸른 숲과 비옥한 땅으로 변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땐 1만여 명이 사는 생태도시로 발전했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 이야기다. 이 작품은 전 세계에 나무 심기 열풍을 일으켰고, 유엔환경계획의 ‘10억 그루 심기 운동’ 모티브가 됐다. 소설이 출간된 1953년, 우리나라 산은 척박하기 짝이 없었다. 유엔이 “한국 산림은 복구 불가능”이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그런 민둥산에 기적이 일어났다. 1960년대 중반 대대적인 산림녹화를 시작했고 땔감 나무는 연탄으로 대체했다. 한 해에 5억 그루씩 나무를 심었다. 민간에서도 ‘나무 할아버지’ 김이만 씨를 비롯해 은수원사시나무를 개발한 현신규 씨, 혼자서 543ha 임야를 가꾼 ‘조림왕’ 임종국 씨 등이 온몸을 바쳤다.

미군 대위로 한국에 와 40년간 천리포수목원을 일군 ‘벽안의 나무 일꾼’ 민병갈 박사 등 외국계 인사도 많았다. 유한킴벌리는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벌였고, SK그룹은 대규모 활엽수 단지를 조성하며 힘을 보탰다.

이렇게 가꾼 산림이 몇 년 전부터 훼손되기 시작했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태양광 발전 시설로 전국 1만2700여 곳의 숲 5669㏊가 파괴됐다. 여의도의 20배에 가까운 면적이다. 벌채된 나무만 291만여 그루에 이른다.

지금 같은 태양광 발전 시설은 대규모 벌목과 토목공사 때문에 숲을 해칠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산림 대신 건물 지붕과 외벽을 이용한 ‘건축물 일체형 태양광’(BIPV) 발전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중국도 기와형 태양광 설비를 늘려가고 있다. 우리나라만 여전히 울창한 숲을 베어내는 개발도상국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시설은 전기가 많이 필요한 도심 건축물에 설치해야 송배전 비용을 줄이고 숲도 살릴 수 있다”며 “산을 깎는 건 탄소 제로 정책에도 역행한다”고 지적한다. 어제는 76번째 식목일이었다. 평생을 푸른 숲 가꾸기에 바친 우리의 ‘나무 할아버지’와 ‘조림왕’이 이토록 처참하게 변한 ‘숲의 흉터’를 봤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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