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움직이는 실리콘밸리의 한국 CVC들 [김재후의 실리콘밸리 101]

입력 2021-04-07 10:17   수정 2021-04-20 13:31

안녕하세요.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실리콘밸리 특파원입니다. 1~2회 뉴스레터에서 실리콘밸리의 개요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뉴스레터에선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벤처캐피털에 대해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벤처캐피털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벤처캐피털을 쉽게 정의하면 '될성 싶은' 스타트업 등에 자금을 투자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업투자사가 주체가 되어 펀드에 자금을 모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해당 스타트업이 잘되면 기업공개(상장·IPO)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이때 주체가 대기업이 되면 앞에 '기업형'이 붙습니다. 영어론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기업형 벤처캐피털)라고 합니다. CVC는 투자 수익보다는 기술을 확보하고 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들도 처음엔 이런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이었습니다. 벤처캐피털은 초기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는 스타트업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거나 직접 발굴해 자금을 넣습니다. 초기엔 보통 1~10%가량 소액의 지분을 10억(100만달러 안팎) 단위로 투자합니다. 초기 투자만 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이 상장 등의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단계를 두고 과제를 수행하게 합니다. 이를 시리즈(series)라고 부릅니다. 시리즈 단계마다 다시 벤처캐피털들로부터 투자를 받게 되며 중간에 도태되지 않는다면 실제로 상품(서비스)을 내놓고 상장에 성공하게 됩니다. 페이스북 우버 리프트 트위터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이들을 품은 실리콘밸리를 만든 건 기술만 있었던 게 아니라 벤처캐피털도 있었다는 얘깁니다.

오늘은 벤처캐피털의 첫 시간인 만큼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CVC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술 중심의 대기업들과 발빠른 중견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내고 투자처를 찾고 있습니다.
삼성벤처투자(Samsung Venture Investment) /삼성벤처스아메리카

삼성벤처투자의 본사는 서울에 있습니다. 베이징 보스턴 런던 도쿄 텔아비브 노이다(인도) 등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중심인 멘로파크(MenloPark)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펀드 규모는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입니다.


주주는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입니다. 21세기가 되기 전인 1999년에 설립됐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지금까지 404건의 투자를 성공시켰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투자처는 187개입니다. 아직 투자를 집행하지 않은 현금 보유액을 드라이파우더(Dry Powder)라고 부르는데, 지난 3월말 기준 드라이파우더는 2억7447만달러(약 3100억원)로 파악됩니다. 투자처의 6할(58%)은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이고, 헬스케어, 에너지, 금융 섹터 등도 꽤 투자하고 있습니다. 공동 투자자로는 7건을 같이한 인텔(CVC)이 있습니다. 반도체와 IT에 특화된 모기업이 있다보니 투자 대상도 비슷해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국만 따로 펀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이름은 삼성벤처스아메리카펀드입니다. 여기에선 보통 삼성 벤처스라고 부릅니다. 실리콘밸리 등 미국은 양성훈 상무가 주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1975년생인 그는 서울대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 기술기획그룹을 거쳐 2018년 실리콘밸리로 왔습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 지식을 살려 주로 소재·장비·소프트웨어·메모리 등의 글로벌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LG Technology Ventures)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아예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2018년에 설립돼 현재 샌타클래라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등이 공동 출자했습니다. 지금까지 총 29건을 투자했고, 현재 24개 투자가 포트폴리오에 담겨 있는 상황입니다. 드라이파우더는 1억3800만달러(약 1560억원), 관리대상자산(AUM)은 4억달러(약 4400억원) 정도 입니다. 투자처의 58%는 역시 정보기술(IT) 스타트업으로 가장 많았고, 재료와 자원,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각각 10%로 뒤를 이었습니다.

같은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한 투자자는 도요타AI벤처스로, LG테크노벤처스와 총 3건의 투자를 함께 했습니다. LG전자와 계열사들이 미래 핵심 사업을 자동차 전자장비 분야로 움직이는 모습을 투자에서도 보여주고 있다는 평입니다. 지금은 주로 정보기술과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자동화 제조기술, 생명공학, 에너지 등의 분야에 투자처를 찾고 있습니다. 김동수 대표가 총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1969년생인 김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삼성전자 벤처투자팀 매니저와 삼성벤처스 미주지사장을 거쳤습니다.
현대크래들(HYUNDAI CRADLE)
현대자동차가 모회사로 2017년 실리콘밸리의 멘로파크에 설립됐습니다. 전신은 2011년에 설립된 현대벤처스입니다. 지금까지 총 투자건은 43건이고, 현재 진행 중인 투자건은 32건입니다. 멘로파크 외에도 텔아비브 베이징 베를린 서울 등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답게 특정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를테면, 로봇기술 지능화시스템 친환경기술 제조기술 모빌리티 등에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중 IT의 투자비율이 전체 투자처의 절반(51%)을 넘고 있습니다. 미래의 자동차가 자율주행 전기차 등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트렌드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올 초에 떠들썩했던 현대차의 미국 로봇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 작업에도 현대크래들이 주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2019년 현대크래들이 주최한 비공식 행사에 기조연설을 하고 5시간 동안 내내 행사에 참석하는 등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탠퍼드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제너럴모터스(GM)과 제록스 등을 거친 존 서(John Suh) 부사장이 헤드를 맡다가 지난해 헨리 정이라는 분이 헤드로 왔습니다. 헨리 정 부사장과 컬럼비아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기업전략부서를 거친 김창희 상무(오퍼레이션 헤드)가 사무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SK텔레콤아메리카스(SK Telecom Americas)
SK그룹은 SK하이닉스 산하에 실리콘밸리 사무실을 두고 관련 업계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의 본사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계열사인 SK텔레콤은 2008년부터 직접 실리콘밸리에 벤처캐피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SK텔레콤아메리카스라는 이름으로 서니베일에 주소를 두고 있으며, 관리대상자산은 1억달러(약 1100억원) 정도입니다. 8건의 투자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지금까지 39건의 투자를 했습니다. 투자의 9할(87%)가 IT 분야였습니다. 미시간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고 모토톨라를 거친 박민 대표가 카이첸 대표와 함께 실리콘밸리 투자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 회사들도 CVC 일찍 진출
4대 그룹 외에도 미래기술에 관심이 많은 한국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스타트업 투자를 하고 있거나 투자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은 현대모비스와 만도 등입니다. 미래 모빌리티 기술이 화두로 떠오른 만큼,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모비스는 서니베일에 모비스 벤처스를 2018년 설립했습니다. 현대크래들이 중장기 비전에서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역할을 한다면 모비스벤처스는 자율주행과 친환경 관련 부품 기술 등 바로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스타트업 발굴에 치중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라그룹 계열사인 만도도 마운틴뷰에 '만도이노베이션실리콘밸리(MISV)' 사무실을 내고 자율주행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미래 기술을 찾아 나섰다는 설명인데,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직접 챙기면서 자율주행 관련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동차 관련 회사인 넥센타이어도 지난달 실리콘밸리에 벤처캐피털 회사를 출범시킨다고 밝혔습니다.
GS 산은도 실리콘밸리에 본격 채비
이 외에도 GS그룹은 지난해 8월 미국 샌 마테오에 벤처 투자법인인 GS퓨처스를 설립했습니다. 지주사 ㈜GS를 포함해 GS에너지, GS칼텍스, GS리테일, GS홈쇼핑, GS글로벌, GS EPS, GS E&R, GS파워, GS건설 등 총 10개 계열사가 출자한 1억5500만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할 계획입니다. 주로 계열사 사업과 관련된 모바일쇼핑 에너지 환경 등의 스타트업을 발굴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은행권에선 산업은행이 올 하반기에 벤처캐피털을 설립한다고 최근 밝혔습니다. 국책은행인 만큼 미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보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돕고자 하는 목적이 크며, 자본금은 1억달러(약 1100억원)로 시작해 점차 늘려간다는 계획이라고 합니다.
네이버도 일본 자회사 통해 진출
네이버도 일찌감치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 법인인 라인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라인은 2014년 라인벤처스를 팰로앨토에 세웠습니다. 도쿄에 있는 본사엔 일본인과 한국인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고, 팰로앨토에 있는 실리콘밸리 사무소는 한상준 씨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현재 50건을 투자하고 있는데, 정보기술분야 회사가 절반(51%)을 넘고 헬스케어와 금융 분야에도 투자금의 각각 7%, 8% 정도를 넣은 것으로 나옵니다. 특히 이 회사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하정우 대표가 운영하는 실리콘밸리의 베어로보틱스에도 올초 투자금을 넣었습니다. 베어로보틱스는 식당에서 서빙로봇을 만드는 회사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투자한 회사로도 유명합니다.

오늘은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형 벤처캐피털에 대해 간략히 알아봤습니다. 다음주엔 기업형이 아닌 한국계 벤처캐피털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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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김재후 특파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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