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볍씨를 담그는 마음

입력 2021-04-06 17:38   수정 2021-04-07 00:30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많고 많은 일 중에 어린 시절 고향집 마당에서 어른들이 볍씨를 담그던 날의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강원도 지역은 대개 청명 아침이다. 마당가에 커다란 독과 함지가 준비되어 있다. 물을 퍼 담고 옮길 수 있는 그릇들도 나온다.

독은 이미 전날 어머니가 깨끗하게 씻어 놓았다. 그냥 물로만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독 안에 짚을 태워 연기 소독도 했다. 부정을 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곳간 한쪽에 따로 잘 보관해 두었던 볍씨 가마니가 마당으로 나온다. 요행히 볍씨 가마니 안에 들어 있다 해서 그 속의 알곡이 모두 볍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당에 나온 저 크고 작은 그릇들이 다시 한번 알곡을 시험한다.

커다란 함지에 물을 가득 퍼 담고 그 속에 씨암탉이 오늘 아침에 막 낳은 달걀 하나를 띄워본다. 당연히 가라앉는다. “이제 소금을 넣어라.” 할아버지의 말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내온 소금을 조금씩 흘려 넣으며 막대기로 물을 젓는다. 소금이 녹으면서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달걀이 조금씩 위쪽으로 떠오른다. 달걀이 물 밖으로 절반쯤 떠오르면 소금 넣기를 멈춘다.

거기에 볍씨를 붓는다. 볍씨들에 이 시험은 가혹하고 엄격하다. 그냥 맹물이면 제일 밑바닥에 가라앉을 볍씨도, 그래서 못자리에 뿌리면 아무 탈 없이 싹을 틔울 볍씨들도 이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물 위로 떠오르고 만다. 예전의 과거시험장 분위기가 아무리 엄격했다 하더라도 볍씨들이 시험을 치르는 청명 아침 마당의 분위기만큼 엄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 번 더 저어라.” 잠시 전엔 가라앉았는데 밑바닥까지 막대를 넣어 휘저은 물의 부력과 물살을 타고 다시 떠오르는 볍씨들이 있다. 분부하는 할아버지도 진지하고, 할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아버지와 물시중을 드는 어머니도 진지하고, 구경하는 우리도 절로 진지해진다. 이런저런 자리에 올라 거들먹거리는 사람들도 이 마당에 오면 절로 몸을 낮추게 될 것이다. 자기는 배운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이 자리에 오면 저절로 입을 다물고 겸손해질 것이다. 단지 속엔 이제 모래밭에 뿌려도 싹을 내리고 뿌리를 내릴 속이 꽉 찬 볍씨들만 남았다.

아직 마지막 절차가 남았다. 볍씨가 싹을 틔우는 동안 부정 타지 말라고 볍씨를 담근 독에 금줄을 두른다. 금줄 새끼는 오른쪽으로 꼬는 것이 아니라 왼쪽으로 꼬아야 한다. 왼새끼 사이사이에 꿰어놓은 창호지 조각이 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에 나부끼고, 햇빛은 그 위에 종일 머문다.

내 기억 속에 그것은 단순히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일로서만이 아니라 성스러운 의식이며 기도였다. 농경의 추억은 점차 사라져 가도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에 이보다 더 정성을 다하는 일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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