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주거약자 보호'의 값비싼 교훈

입력 2021-04-06 17:49   수정 2021-04-07 00:48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첫 임기 5개월째를 맞은 2012년 2월, 서울시는 ‘뉴타운 출구전략 이후에도 주택공급 유지’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박 전 시장의 뉴타운 사업 재검토로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커지자,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서울시는 직전 5년간 뉴타운 사업을 통한 신규 공급 주택 수(17만5000여 가구)가 철거 주택 수(17만1000여 가구)와 별 차이가 없어 뉴타운이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지 못했다는 점을 논거로 들었다. 또 갈아엎는 방식의 뉴타운 개발이 줄면 값싼 서민 주택이 덜 철거돼 서민 주거가 오히려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결국 뉴타운 사업을 접고, 다세대·다가구 건축 규제를 완화하면서 노후·불량 건축물 개선에 주력했다.
'서민주택'만 주목한 서울시
서울시 주택행정을 되짚어보다 당시 시정(市政)이 이 정도로 편협했었나 하는 생각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1000만 국제도시’에 걸맞지 않게 주택시장 안정을 ‘서민주택’ 프레임으로만 바라본 것이다. 당시에도 30~40대 고소득층이 새 아파트를 찾아 도심으로 들어오려는 현상은 충분히 감지됐다. 신축 아파트는 20년 이상 된 일명 ‘구축’ 아파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간 효율성, 생활 편의성 등이 뛰어났다. 이런 젊은 세대의 신축 수요는 세계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제대로 된 대책으로 시장 수요에 부응하기는커녕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새 아파트 공급을 막는 역주행을 했다. 뉴타운 개발 중단으로 지정이 해제된 정비구역만 386곳(2019년 말 기준)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절반(193개)은 도시재생·주거환경관리 사업 등으로 대안을 찾았으나, 나머지는 그대로 방치됐다. 서울 강북지역엔 낡고 어둡고 음침한 뒷골목이 점점 더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울의 아파트 공급이 크게 줄어든 것은 필연적 귀결이었다. 2015년 3만8300가구였던 아파트 분양 물량(직방 자료)은 주택경기가 활황을 보인 2018년 2만3300가구, 작년 2만2900가구에 그쳤다. 이 여파로 서울의 자가(自家)보유율은 47%대에 머물고, 1000명당 주택 수도 400~500가구가 넘는 런던, 뉴욕, 도쿄, 파리 등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380.7가구(2018년)에 불과하다. 주거 문제를 복지로만 접근한 10년간의 ‘이념 편향’ 행정이 주택 공급 부족을 낳고 집값 폭등의 요인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젠트리피케이션 양면성 봐야
박 전 시장은 재개발이 지가·임대료 상승으로 서민의 터전을 앗아간다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폐해에 주목했을 것이다. 이를 막는 것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심 골목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놓고 여러 계층이 상생하는 현장이라고 홍보하는 데 그쳤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낙후지역 세입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차상위 약자’라 할 수 있는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꺾어놓는 결과 또한 가져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적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에서 “도심의 재활을 도모하는 시장의 힘을 막으려 말고, 뒤에 남겨진 취약계층의 주택 옵션, 경제적 기회를 개선하는 게 과제”라고 지적했다. 미국 사회학자 더글러스 매시는 광범위한 대도시 유출입과 비교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새 발의 피’라고 했다. 새 시장을 맞을 서울시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주거복지와 도시재생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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