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너무 더딘 바이오 규제혁신

입력 2021-04-07 16:57   수정 2021-04-08 00:26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예요. 또 희망고문만 할 게 뻔하죠. 한국에선 아예 사업을 접고 해외에서 기회를 찾으려고 합니다.”

뜻밖이었다. 제한적이나마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의 규제 빗장이 풀린 데 대한 업계 반응을 묻는 말에 돌아온 A사 대표의 답변이었다.

DTC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침 등을 채취해 보내주면 진단기업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혈당 혈압 탈모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암 당뇨 뇌졸중 등 질환에 걸릴 확률도 계산할 수 있다. 다만 개개인의 유전자 특성을 분석한 것이어서 질환이 100% 생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제 발병 원인은 유전적 배경뿐 아니라 후천적 환경 등에도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병 가능성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맞춤형 건강관리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2년 걸린 규제샌드박스
그런 점에서 바이오 분야 규제샌드박스 안건을 최종 승인하는 기구인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공용IRB)가 지난 6일 마크로젠이 신청한 13개 질환에 대한 DTC 특례실증 연구를 승인한 것은 진일보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론적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정확도를 담보할 수 없고, 과잉 진료를 부추길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DTC 검사 항목 확대에 딴지를 걸어온 의료계의 반대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 등 중증질환이 검사 항목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의미는 더 크다.

이번 승인에는 꼬박 2년2개월이 걸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마크로젠의 질환 DTC를 규제샌드박스 1호로 지정한 것은 2019년 2월이다. 당시엔 탈모 등 미용 관련 유전자 항목으로 제한된 DTC 시장의 규제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선 질환 DTC에 대한 제약이 많지 않아 서비스가 활성화되던 때이기도 했다. 업계에선 늦었지만 정부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시작부터 벽에 가로막혔다. 의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공용IRB 심의가 문제였다. 파행을 거듭했다. 금방 시작할 것 같던 질환 DTC 사업은 속절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정식 허가가 아니라 실증 연구 방식이었는데도 그랬다. 바이오업계는 병원 유전자검사 시장을 지키려는 의료계의 집단이기주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처럼 병원에서만 질병 치료 등의 목적으로 유전자검사를 받을 수 있게 제한하려는 의도라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한국 시장 떠나는 K바이오
오랜 씨름 끝에 바이오업계는 숙원이던 규제 완화의 단초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도 왜 A사 대표는 반갑지 않다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불신 탓이다. 2년의 실증 연구가 끝난 뒤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불신이 가득하다. 여전히 정부의 혁신 의지는 아리송하고 의료계의 몽니는 계속될 것이라는 게 비단 A사 대표만의 생각은 아니다. 바이오업계는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바이오·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며 규제 혁신을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쳤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질환 DTC 사업이 첫발을 딛게 됐다. 이것이 바이오 규제혁신의 단초가 되게 하려면 정부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의료계의 몽니에 더 이상 휘둘려선 안 될 일이다. A사 같은 곳이 더 나와선 안 된다. 정부가 의지를 보일 때다.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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