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의 법과 법정] 위협받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입력 2021-04-07 17:50   수정 2021-04-08 17:41

표현의 자유는 인류가 오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쟁취한 핵심적인 기본권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건강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는 측면도 있다. 민주주의는 여론의 자유시장에서 다양한 견해가 교환되고 비교 선택됨으로써 가장 좋은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앞뒤 제하고 막무가내의 다수결로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거나, 정보의 조작이나 의제(議題)의 공학적 설계를 통해 여론을 왜곡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인터넷 기술혁명 이전까지 개인이 새로운 사실이나 견해에 접하는 주된 방식은 책이나 신문 기사, 논설을 읽어 습득하거나 상당한 시간을 들여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것이었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접하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퇴계와 고봉이 서로 다른 견해를 교환할 때 상대의 편지를 수없이 읽고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었으며 답신을 쓰면서도 많은 퇴고를 거쳤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 사람들은 SNS를 통하거나 헤드라인을 보고 클릭한 짧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잠깐 사이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리트윗해서 견해가 전파되고 여론이 형성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여론 참여자들의 숙고를 통한 자율정화나 책임 있는 언론기관을 통한 자율규제가 작동하기 어렵다. 그 결과 잘못된 정보가 걸러지지 않은 채 압도적으로 퍼져 여론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높아졌다. 변화된 환경이 표현의 자유에 대해 극히 관대한 전통적 법리에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런 상황을 염려한 정부는 형사처벌 강화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포함해 가짜뉴스를 규제하기 위한 방법을 여러모로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여전히 극히 자제해야 한다.

표현에 대한 규제는 역사적으로 권력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남용돼 왔다. 영미법에서 명예훼손은 당초 반란죄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무수히 있었던 필화 사건, 사문난적 논의, 벽서 사건 등도 다 권력자의 의중에 어긋나는 표현에 대한 처벌에 해당한다.

권력집단의 의중에 반하거나 대중의 편견에 부합하지 않는 견해에 대해 시민단체가 나서서 고소 고발하거나 사람들이 몰려가 비난하는 현상이 우려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위축효과를 일으켜, 많은 사람은 할 말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는다. 다수가 침묵하는 동안 강경하고 선명한 견해를 확대 재생산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마치 여론인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 견해가 양극화, 진영화되며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세력이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압살할 위험이 있다. 교회권력이 지배하던 시절 대부분의 선량한 지식인들에게 지동설은 허황된 가짜뉴스였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종교인들이 전하고자 하는 진리 역시 가짜뉴스에 해당할 것이다.

그 밖에 새로운 기술에 의한 위협도 있다. 인공지능(AI)을 통해 개인의 성향을 분석하고 좋아할 만한 기사를 추천해 클릭수를 늘리는 현재의 인터넷 언론 환경은 결과적으로 여론의 자유시장 형성을 방해한다. 자기의 성향에 부합하는 기사만 계속 접하게 되면 반성할 기회가 생기기 어렵고 편견은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진다.

건강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갇혀 있지 않고 흘러야 한다. 구성원들이 듣기 싫은 이야기도 참고 들어줘야 하며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사실이나 견해에 반하는 정보도 살펴보며 틈틈이 스스로의 신념 체계를 반성해봐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깨어 있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근면성이 필요하다.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은 ‘확신의 편안함? 의심의 불편함!’이라는 글에서 사람들의 ‘인지적 게으름’을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 최고 수준의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스티브 잡스조차 인지적 게으름의 함정에 빠진 적이 있다는 예화를 들려준다.

편파성은 여론의 자유시장에서 건전한 시민에 의해 자정돼야 하는 것인데 현재의 환경이 이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팔리는 뉴스’를 생산해야 하는 환경과 결합된 신기술이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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