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위 '1인치의 예술작품'

입력 2021-04-08 17:19   수정 2021-04-16 18:31


“이건 버킨이라고요!”

2000년대 초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버킨 백을 사러 온 주인공 사만다 존스에게 에르메스 매장 직원이 쏘아붙인 말이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는 제품이 없어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는 ‘명품의 명품’으로 불린다. 1837년 파리 외곽의 한 마구용품 판매점에서 출발한 에르메스는 최고급 마구용품을 제조해 유명해진 뒤 가죽 가방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럭셔리 패션 명가’ 에르메스가 시계를 제작하기 시작하자 ‘에르메스 마니아’들은 열광했다. 에르메스만의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감성을 가방, 의류, 신발 등에 이어 시계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패션 명가 에르메스, 럭셔리 워치메이커로
에르메스가 시계를 처음 제조한 건 1912년. 창립자의 3대손인 에밀 에르메스가 승마를 좋아하는 딸 재클린에게 가죽 시계를 만들어 선물한 것이 에르메스 시계의 시작이었다. 당시엔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차곤 했는데 말을 타다 보면 회중시계가 자주 떨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계를 손목에 찰 수 있도록 스트랩을 달아 손목시계를 만들어줬다. 20세기 초 에르메스 시계는 대부분 회중시계였다. 상류층 남성들이 이를 가죽 케이스에 넣어 휴대용으로 사용했다. 특히 가죽 벨트에 소형 무브먼트(시계 동력장치)를 장착한 벨트형 시계는 골프, 승마를 즐기는 상류층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에르메스가 본격적으로 시계산업에 뛰어든 건 1970년대 후반이다. 에르메스는 3대손 에밀 에르메스가 사망한 뒤 사위인 로베르 뒤마가 경영권을 물려받아 현재까지 뒤마 가문이 경영하고 있다. 로베르의 아들인 장 루이 뒤마는 1978년 스위스 시계산업의 중심인 비엔 지역에 시계 부문 자회사인 라몽트르 에르메스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시계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르메스는 이후 무브먼트 공방 ‘보쉐 매뉴팩처 플러리에’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자체 무브먼트 제작과 개발에 적극 나섰다. 2012년에는 다이얼 제조사 나테베르, 2013년에는 케이스 제조사 조세프 에랄드를 잇달아 사들였다. 무브먼트는 수백 개의 필수 부품을 정밀하게 조립해 시계의 ‘심장’으로 불린다. 스위스 내에서도 이런 무브먼트를 직접 개발해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하이엔드급 워치메이커 몇 곳밖에 없다. 단순히 ‘패션 시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럭셔리 워치메이커’로 자리잡겠다는 에르메스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보쉐 매뉴팩처 플러리에는 연간 3만5000개의 무브먼트를 생산한다. 손으로 태엽을 감아 사용하는 기계식 무브먼트(셀프와인딩), 차고 있으면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오토매틱 무브먼트(핸드와인딩), 아주 얇은 두께의 울트라신 무브먼트 등 다양한 부품을 제조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무엇보다 가죽에 일가견이 있는 브랜드 특성을 살렸다. 럭셔리 워치메이커 중 유일하게 자체 제작한 스트랩을 사용하는 브랜드가 에르메스다. 수천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에 사용하는 최고급 가죽으로 스트랩을 제작한다.

‘차도남’ 위한 ‘H08’ 올해 첫선
에르메스 워치가 올해 첫선을 보인 신제품은 남성용 시계 ‘에르메스 H08’이다. 제품명의 0은 무(無), 8은 무한대를 뜻한다. ‘무와 무한을 오가는 여행’처럼 시간의 신비와 깊이를 담았다는 의미다.

디자인은 간결하지만 유려하다. 끝을 둥글린 사각형의 케이스 안에 원형 베젤(테두리)을 담아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꾀했다. 광물 소재 케이스와 블랙, 그레이, 블루, 오렌지 색상은 ‘차가운 도시 남성’을 연상시킨다.

에르메스 H08은 세 가지 모델로 출시됐다. 첫 번째 모델은 매끈한 새틴 마감 처리를 한 세라믹 베젤과 야광으로 만든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시간을 보여주는 숫자), 블랙 니켈로 마감 처리한 핸즈(시침 분침 등 시간을 가리키는 부품), 데이트 디스플레이(날짜 창) 등이 특징이다. 고급스러운 광택이 돌아 정장에 잘 어울린다.

나머지 모델은 우븐 스트랩을 달아 캐주얼한 느낌을 살렸다. 블루 또는 블랙 우븐 스트랩, 블랙 또는 오렌지 색상의 러버 스트랩을 매치할 수 있다. H08의 가격은 600만~1000만원대다.
여성용은 더 정교하고 더 화려하게
여성용 신제품은 우아해졌다.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실크 스카프의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앨리스 셜리가 디자인한 실크 스카프 속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시계 속으로 들어왔다.

여성용 신제품 ‘아쏘 포켓 으악!(Arceau Pocket Aaaaargh!)’은 제품명으로 감탄사를 활용했다. 디자인은 1978년 앙리 도리니가 디자인했던 ‘아쏘’ 시계를 차용했다. 시계 커버는 가죽 모자이크 기법으로 장식했다. 티라노사우루스를 정교하게 담았다. 머리와 비늘은 오리지널 스카프 패턴을 그대로 담기 위해 수천 개의 가죽 조각을 일일이 이어붙였다. 둥근 돔 형태의 공룡 눈, 색다르게 처리한 턱과 혀, 미세하게 다른 색상들의 조화가 독특하다.

기능도 뛰어나다. 90시간 파워리저브(태엽을 감지 않아도 자동으로 구동되는 시간), 미닛리피터(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플라잉 투르비용(중력으로 인한 시간오차를 줄여주는 부품을 공중에 떠 있도록 구현) 등을 갖췄다. 스트랩은 최고급 악어 가죽을 썼다.

여성용 시계 ‘슬림 데르메스 세 라 페트’에도 실크 스카프의 디자인을 담았다. 연미복과 모자를 쓰고 말을 타고 있는 장난기 넘치는 해골 캐릭터는 2012년 노무라 다이스케가 디자인한 남성용 실크 스카프에서 차용했다. 세필붓으로 일일이 칠한 에나멜링 기법, 입체감을 살려주는 인그레이빙 기법을 적용해 예술성을 높였다. 세계에 단 8점만 한정 판매한다. 국내 입고 여부는 미정이다.

배정철/민지혜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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