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중물 붓기

입력 2021-04-08 17:57   수정 2021-04-09 00:03

어릴 적 고향집 앞마당에 샘물을 끌어올리는 재래식 펌프가 있었다. 펌프질하는 모습이 작두질과 비슷해 작두펌프로도 불렸다.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펌프에 붓고 열심히 위아래로 펌프질을 하면 몇 번의 쿨렁거림 후에 시원한 샘물이 콸콸 쏟아지곤 했다. 이때 처음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이 ‘마중물’이다. 손님이 오면 주인이 나가서 맞이하는 것처럼, 펌프질을 할 때 끌려 올라오는 물을 맞이하는 물이라는 뜻이다. 일단 물이 끌려 올라오면 마중물이 없어도 많은 물이 나오게 된다.

마중물은 작은 도움이지만 큰 힘이 된다. 우리 주변에서도 마중물의 사례를 접할 수 있다. 한 유명 브랜드의 토스트 프랜차이즈 대표는 우연히 만난 부부의 딱한 상황을 듣고 가맹비 없이 가맹점을 내줬다. 도움을 받은 부부는 비용 부담을 덜고 자립에 성공할 수 있었고, 이 훈훈한 상생 사례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다.

돈을 빌려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은 재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찍혀 취업도 힘들어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신용불량자 낙인을 공고하게 찍어 놓는다고 해서 채권자가 이 사람으로부터 빚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용불량 낙인은 채무자를 구속하는 족쇄이면서 채권자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굴레인 것이다. 이때 채무자가 갚을 수 있는 정도로 채무를 조정해주는 마중물을 붓는다면, 채무자는 신용불량자의 굴레를 벗어나 경제 재기가 가능해 돈을 벌 수 있게 되고 채권자는 일부나마 빚을 받을 수 있어 하나도 받을 수 없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 된다.

예금보험공사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채무자 중 상환능력을 고려해 채무를 조정해주고, 더 나아가 경제적 자활을 돕기 위해 재기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립의 꿈을 키워 나가는 분들의 사연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아이 셋을 둔 평범한 한 주부는 보증을 섰다가 채무 불이행자가 됐다.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까지 겹쳐 이혼한 그는 낮에는 식당,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을 먹여 살렸지만 채무 불이행자라는 족쇄 때문에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예금보험공사는 그의 상황을 고려해 채무를 조정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취업을 지원하는 상담을 연결해줬다. 이를 통해 그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요양병원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된 취약계층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희망찬 내일을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마중물을 붓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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