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金통장도 못 만드네…투자자 울리는 금소법

입력 2021-04-08 17:31   수정 2021-04-16 18:19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여윳돈 3000만원을 적립식 금(金) 통장에 넣으려고 은행 창구를 방문했다가 헛걸음을 했다. 금 통장은 국제 금 시세에 따라 잔액이 움직이는 간접투자 상품이다. 김씨는 투자 성향 설문조사에서 ‘안정추구형’으로 판정돼 ‘공격투자형’만 가입할 수 있는 금 통장 투자가 아예 불가능해졌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하소연했지만 창구 직원은 “나중에 다시 와서 설문조사 해보세요”라고 답했다. 김씨는 “최근 금값이 저점을 찍었다는 말을 듣고 은행 창구로 달려갔는데 이렇게 설문조사 한 번으로 투자 자체가 막혀버리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했다.
설문조사 잘못하면 안전자산도 못 사
지난달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후 이처럼 시중은행 점포에서 투자상품에 가입하려다 발걸음을 돌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금 통장처럼 친숙한 상품도 가입 절차가 크게 까다로워졌고, 대기 시간도 길어졌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금소법은 일부 고위험 금융상품에만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 과장광고 금지)를 전 금융상품으로 확대한 게 골자다. 일반 주식형 펀드는 물론 리스크가 낮다고 평가받는 금 통장이나 채권형 펀드에 가입하려 해도 각종 권유서와 신청서에 서명해야 하고 20여 분간 상품 설명을 들어야 한다. 원리금이 보장되는 예·적금조차 계약서, 약관, 상품설명서까지 챙겨야 한다. 초고위험 투자상품에 가입할 때는 관련 서류만 10종에 달한다.

금소법은 투자 성향(위험감수 성향)을 파악해 알맞은 상품만 권유할 수 있다는 ‘적합성의 원칙’을 까다롭게 따진다. 설문조사를 통해 공격투자형, 적극투자형, 위험중립형, 안정추구형, 안정형 등 5단계로 분류하고 해당 위험도와 같거나 낮은 수준의 금융상품만 팔 수 있다.

수차례 금 투자 경험이 있는 김씨의 금 통장 가입이 막힌 것도 이 같은 설문조사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실제 투자해본 금융투자상품의 종류가 적고, 전체 자산 대비 비중이 낮다고 답했다면 ‘공격투자형’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게 일선 은행원들의 얘기다. 한 은행원은 “과거에는 위험감수도가 낮은 소비자라도 투자를 강력하게 원하면 ‘부적합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한 뒤 가입을 허용했지만 이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중 삼중 판매 규제 손봐야”
설문 문항이 은행별로 다르고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혼란을 가중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총 문항 수는 15개가량으로 재산과 연 소득은 물론 본인이 생각하는 위험감수 성향 등 주관적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솔직하게 답변했다가 상품 가입이 좌절된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상품 가입도 스펙(투자경험)을 쌓아야 가능해졌다”, “투자 성향 질문지를 스터디해야 하느냐”고 금융당국을 성토하거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는 팁 등을 공유하기도 한다.

정작 은행원들은 이 같은 질문에 안내해줄 수조차 없다. 금소법상 투자 성향 조사는 모든 금융사를 통틀어 개인당 하루 1회만 할 수 있는데, 창구 직원은 이런 설명도 제공할 수 없도록 했다. 금융당국이 “문항 답변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는 투자 성향 조작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겠다”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금융상품의 위험도 분류가 천편일률적이고 일반 상식과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가령 금 통장은 가격 변동이 큰 파생결합증권으로 보겠다는 과거 당국의 유권해석 때문에 ‘공격투자형’으로 분류됐다. 한 은행원은 “물가 상승을 헤지하는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을 가격 변동 위험 때문에 ‘초고위험’으로 분류한다면 환율에 따라 잔액이 변하는 외화통장도 마찬가지로 분류해야 형평성에 맞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권에선 금소법이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과 함께 까다로운 금융상품 판매 규제 전체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기존 판매 규제에다 금소법까지 더해져 이중, 삼중으로 규제가 중첩된 방카슈랑스 등 일부 부문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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