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상호의 역혼동’이라는 법리를 이용했다. 해당 상호를 먼저 쓰고 있던 기업보다 뒤에 쓰는 기업의 영업 규모가 크면 시장에서 ‘규모가 작은 선(先)사용자가 후(後)사용자의 명성과 신용에 무임승차해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선사용자가 소비자를 기망한다’는 오해를 살 경우 이른바 역혼동에 의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세종의 주장이었다.
한국앤컴퍼니 측은 “한국테크놀로지라는 상호는 식별력이 없고 자동차 부품업계에서도 크게 알려지지 않아 혼동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종은 “법원 등기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한국테크놀로지라는 상호로 등기한 사례는 3~4건밖에 없다”며 “그 자체로도 식별력이 있는 표지임이 증명된다”고 반박했다.
이 다툼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5월 한국테크놀로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일반인들의 경우 의사결정을 하는 등의 과정에서 비슷한 상호를 가진 채권자(한국테크놀로지) 및 채무자 회사(한국테크놀로지그룹)를 서로 혼동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자동차 부품류 제조·판매를 영위하는 회사 및 지주회사의 간판·선전광고물·사업계획서·명함·책자 등에 해당 상호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명령했다.
세종에선 변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임보경 변호사(사법연수원 30기)가 승리의 주축이 됐다. 임 변호사는 전체 사건을 지휘하며 소송 전략을 수립했고, 상호 혼동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는 등 증거조사 방법을 발굴했다.
임 변호사는 “이 판결은 그간 묻혀 있던 역혼동 법리를 활용해 피해 사례를 인정받은 최초의 사건”이라며 “애초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말을 들은 소송이었지만 해외 판례 연구 등을 성실히 한 끝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 상호명 사건은 규모가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의 상호를 따라 써 혼동을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이 사건은 반대의 경우”라며 “업계에서도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봤는데 결국 한 중소기업의 정체성을 지키는 결과를 도출해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 외에 이숙미 변호사(연수원 34기)가 함께 가처분 변론 전략을 세웠다. 이 변호사는 로펌 평가매체 체임버스앤드파트너스가 선정한 송무 분야 전문 변호사다. 황지원(변호사시험 4회), 김소리(변시 8회) 변호사 등도 실무를 도왔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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