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美의회 청문회의 힘

입력 2021-04-12 17:48   수정 2021-04-13 00:33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낙마시킨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은 이를 처음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진상이 제대로 드러난 것은 이후 의회 청문회에서였다. 닉슨 최측근을 증언대에 세워 8시간 동안 ‘진실을 말하게’ 한 게 결정타였다.

1987년 니카라과 반군 ‘콘트라’ 지원 스캔들은 올리버 노스 중령이란 청문회 스타 덕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기사회생한 경우다. 노스는 이란에 무기를 판 돈으로 니카라과 반군을 지원한 것은 국익을 위한 결정이었으며, 대통령은 무관하다고 당당하게 말해 오히려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미 의회 청문회는 1954년 ‘매카시즘’의 발단이 되기도 했고,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엔 반전(反戰) 정서를 확산시킨 촉매 역할을 했다. 어쨌든 영국서 유래한 제도가 대통령제이면서도 삼권분립 원칙이 엄격한 미국에서 꽃을 피운 셈이다.

한국에선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1988년 국회법에 청문회 조항이 신설됐다. 5·18 청문회와 5공 청문회가 열렸고, 당시 무명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보수·진보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청문회는 정치선전의 격전장이 되고, 기업 총수들에 대한 ‘군기 잡기’ 용도로 변질되기도 했다. 입법은 물론 정부 감시, 특정 사안의 조사, 국민 알권리 충족 등 청문회의 많은 순기능이 가려질 정도였다.

이런 인식 탓인지, 미 의회의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15일)를 두고 한국 당국자가 “정책연구모임 성격에 가깝다”고 폄하해 논란이다. 이에 미 하원 관계자가 “청문회를 깎아내리려 정치적 묘사를 한다”고 곧바로 맞받아쳤다. 청문회 주체인 ‘톰 랜토스 인권위’가 상임위는 아니지만, 상·하원 의원 39명이 참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들이 소속 상임위로 가서 얼마든지 관련 입법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청문회는 최근 애플 등 빅테크 기업 대표를 소환하는 경우가 늘었지만, 대개는 실무자 증언 중심이다. 하루에도 10여 차례씩 열린다. 하지만 의회 청문회의 힘은 어떤 불의한 권력의 개입도 용납지 않는 데서 나온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 청문회 때 위축될 수 있었던 모니카 르윈스키가 담담하게 할 말 다한 게 그런 사례다. 이런 역사와 권위를 모르고, 청문회 시작도 전에 괜한 외교적 설화(舌禍)를 자초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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