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빅블러 시대

입력 2021-04-19 17:44   수정 2021-04-20 00:05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게 되는데, 요즘처럼 다이내믹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시대도 없었던 것 같다. 기술 발전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과거엔 산업 간 분명하게 경계가 있었던 것이 허물어지며 모호하게 변하고 있다. 가히 빅블러(Big Blur) 시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인공지능(AI) 음성인식기술 회사를 22조원에 인수하며 헬스케어산업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이 회사는 의사의 음성을 문자로 전환하는 기술이 탁월해 헬스케어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었다. 국내 통신사들은 잇달아 헬스케어 전문 기업을 인수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빅블러가 가능해진 데는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며 기업을 일구는 비즈니스 공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수합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졌다. 내가 첫 창업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만 해도 한 우물을 파서 전문기업이 되는 것이 경쟁력이었다. 창립 50주년, 70주년을 맞는 기업이 각각의 산업별로 즐비했고, 신생기업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주무대는 신산업 분야였다.

그런데 지금은 플랫폼 기업이 은행을 열고, 스마트폰 기업이 호시탐탐 자동차산업 진출을 노린다. 누가 나에게 경쟁사를 묻는다면 여러 이종산업의 기업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늘의 답변과 내일의 답변이 다를 수 있다. 최근 우리 회사 소프트웨어를 도입한 한 프롭테크 기업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쟁의 대상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있다 보니 수많은 신생팀과 기업에 대한 소식을 빠르게 접하는데,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앞세운 곳이 눈에 띄게 늘었다. SaaS 기업은 확장과 축소가 자유로워 적용이 유연하고 민첩하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 중 혼자 힘으로 자립하려는 곳은 드물다. 네트워크 활성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적 업무협업, 합작회사 설립, 컨소시엄 구성, 인수합병까지 다각도로 다양한 기업과 손잡고 상호 성장동력이 되려고 한다. 앞으로 전 산업에서 다양한 SaaS 기업이 더 많이 등장할 것이고 기업 간 합종연횡은 더 활발해질 것이다.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산업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변화라기보다는 지각변동에 가깝다. 인문학 전공 정보기술(IT) 개발자가 평범한 커리어가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헬스케어 금융전문가, 도시 모빌리티 공학자 같은 이름이 생경한 직업도 생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이 지각변동 또한 어느새 우리 삶에 자연스레 자리잡을 것이다. 스스로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열린 눈으로 다양한 분야와 시장에 관심을 이어간다면 어느새 변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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