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까지 일하는 日 유통·제조업…숙련인력 부족이 부른 '정년파괴'

입력 2021-04-20 17:41   수정 2021-05-04 00:03


지난달 25일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대형 쇼핑몰 2층에 있는 가전판매점 노지마 매장. 평일인 데다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했지만 가전제품을 사려는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마루타카 씨, 오랜만입니다!” 20~30대가 대부분인 일반 판매사원에 비해 할아버지뻘은 돼 보이는 사토 다다시 에이스 컨설턴트는 매장에 들어서는 손님의 이름을 불렀다. 이 고객은 고령의 판매사원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걸 놀라워하면서 새로 구입하려는 냉장고에 대한 상담을 부탁했다. 올해 73세인 사토 씨는 노지마 전체 판매사원 가운데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하지만 노지마의 직원들은 나이가 아니라 ‘에이스 컨설턴트’라는 직책 때문에 그를 존경한다.

에이스 컨설턴트는 전국의 180개 노지마 점포, 3000여 명의 판매사원 중 71명만 쓸 수 있는 직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판매왕이다. 냉장고와 세탁기 판매를 전담하는 사토 씨는 에이스 컨설턴트직을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1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일반 판매사원보다 두 배가 넘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팔았다.

인터뷰에 응한 사토 씨는 캐리커처로 가득한 수첩부터 펼쳐보였다. 2~3년 안에 냉장고, 세탁기를 새로 살 가능성이 있는 단골 고객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손수 그린 것들이다. 냉장고의 교체 주기는 대략 10년. 고객이 평생 구입하는 냉장고는 4~5대에 불과하다. 고객을 한 번 놓치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그는 “고객을 감동시키지 않고는 제품을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단골 고객의 이름을 불러주는 원칙을 정했다”고 했다.

사토 씨는 45세까지 파나소닉의 냉장고 제조라인에서 일했다. 그 덕분에 냉장고는 부품 하나까지 잘 안다고 자부한다. 정작 그가 내세우는 자신의 최대 경쟁력은 나이다. 2006년 세계 처음으로 초고령사회(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고가의 냉장고와 세탁기를 주로 구매하는 계층은 고령자다. 이들은 젊은 판매사원보다 같은 눈높이에서 상담할 수 있는 사토 씨 같은 베테랑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이달부터 개정 고령자고용안정법이 시행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근로자에게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보장하도록 의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노지마는 올해부터 3000여명의 판매사원 정년을 80세로 연장해 법도 지키고 에이스 판매사원도 잡았다. 임금피크제 역시 도입하지 않았다. 65세 이후에도 업무 내용이 바뀌지 않는 한 급여도 깎지 않는다.

노지마는 소니, 파나소닉 등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의 파견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판매사원만으로 점포를 운영한다. 폭넓은 상품 지식과 고객 응대 노하우를 지닌 고참 판매원은 회사의 핵심 전력으로 꼽힌다.

일본에선 65세 정년이 되면 일단 퇴사시킨 뒤 무기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형태로 정년을 사실상 없애는 기업도 늘고 있다. 전자소재 업체 미타니산업은 이달부터 65세 이상 직원을 연령 제한 없이 무기계약직으로 재고용하기로 했다. 공조회사 다이킨공업도 65세였던 무기계약직의 연령 제한을 70세로 늘렸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찌감치 숙련된 근로자를 확보하려는 것도 정년제도 개선에 적극적인 이유로 꼽힌다. 1995년 8700만 명이었던 일본의 15~64세 인구는 2030년 7000만 명을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정년을 없애는 만큼 늘어나는 인건비는 기업에 부담이다. 미즈호리서치&테크놀로지는 70세까지 일하는 인구가 증가하면 2040년께 65~69세 근로자의 인건비가 6조7000억엔(약 69조원)으로 2019년보다 29%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인건비 이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인사제도와 성과급을 도입하고 있다. 미타니산업은 무기계약직의 승급제도를 신설했다. 다이킨공업은 무기계약직 사원의 성과에 따라 보너스를 4단계로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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