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보수정당이 살 길

입력 2021-04-22 17:56   수정 2021-04-23 00:06

대선급의 조명을 받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집권세력의 참패로 끝났다. 모든 평론가가 지적하듯, 국민의힘이 자기들이 잘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들이 진정 대오각성했는지 국민들은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몇 년 전 영국 보수당에 관한 책을 발간했을 때, 당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몇 차례 강의 요청을 받았다. 마침 대통령 탄핵으로 당이 초토화된 상황이어서 유럽 정당 가운데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며 여전히 집권 중인 보수당에 대해 진지하게 알고 싶을 것이라고 판단해 초대에 응했다. 이상했던 점은 초상집 같을 거라는 예측과 달리 강의에 모인 의원들은 별로 침통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통령 탄핵과 보수정당, 나아가 한국 보수주의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별로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당에 구심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몇 차례 강의는 모두 계파끼리의 따로따로 모임이었다. 이번에 물러난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그 당의 계파 갈등을 최대 난점으로 지목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터져 나오는 당권 싸움이 그 증거다.

강의에서 강조했던, 제발 젊은 세대를 키우고 세대교체를 하라는 말이 공염불이었음은 지난해 총선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영국 보수당은 일찍부터 될성부른 나무를 키우고 훈련시킨 뒤 당선이 보장되는 안전 선거구에 공천한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는데, 총선 때 보니 안전한 선거구는 자기들이 다 차지하고 될성부른 젊은 후보들은 거의 다 험지로 보냈다. 선거 몇 달 전에 험지에 투입된 그들은 대부분 패했다. 당이 밑바닥까지 전락한 상태에서 보인 지도부의 행태는 졸렬하고 한심했다. 그런 당이 몇 년 사이에 얼마나 변했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젊은 세대와 중도파를 사로잡아야함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많이 돌아섰다지만 이번에도 유독 40대엔 문재인 정부 지지자가 많았다. 왜 그런가에 대해 요즘 여러 해석이 제시된다.

197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정치의식이 자리 잡을 즈음 미선·효순과 광우병 선동을 겪고 노무현의 노란색에 열광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386운동권의 영향을 받은 마지막 세대로 그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20~30대와 달리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적으로도 특별히 고통받지 않았다. 이 모든 해석에 더해, 어느 40대 남성은 더욱 근본적인 원인을 전교조의 영향에서 찾는다. 그들이 중·고교 학생일 때 전교조 교사들은 매너리즘에 빠진 다른 교사들과 달리 따뜻한 형·오빠와 스승으로 학생들을 사로잡았는데, 그때 주입받은 좌편향 세계관이 아직도 40대를 휘어잡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1968년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가 그 시절에 얻은 좌파 성향을 평생 버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세대 효과’ 현상이다.

이 상황에서 야당이 내년 대선에서 이기려면 20~30대의 지지를 지켜내야 한다. 영국 보수당에서 배울 첫 번째 교훈은 ‘과감한 유연성과 외연 확대’다.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정치판이 새롭게 만들어지던 1860년대에 보수당은 과감히 외연을 넓혔다. 당시 당을 이끌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막 선거권을 부여받은 노동대중을 끌어들이는 ‘따뜻한 보수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노동계급에 불안감을 느끼던 중간계급도 감싸 안으려 했다. 기존 지지 세력인 지주층의 반대는 묵살해버렸다.

영국 보수당이 성공하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요인은 국가 경영 능력이 상대편보다 뛰어나다는 이미지다. 4년여 무능한 정권의 실정으로 모든 것이 엉망인 상태라 새판을 짤 자리는 마련돼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규제 일변도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켜 젊은 세대를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희망을 줄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일이다. 동학개미가 보여주듯 요즘 젊은이들은 시장경제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뒤로는 그 단물을 빨아먹으면서 말로는 자본주의를 저주하던 386주사파와는 다르다. 제발 범야 세력이 정신 바짝 차려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몇 년 전 강의에서 강조했듯, ‘개천에서 난 될성부른 용들’로 가득 찬 젊고 팔팔한 정당으로 변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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