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탄소중립이 기업을 해외로 내몬다

입력 2021-04-22 17:54   수정 2021-04-30 16:48

LG화학의 중국 우시공장은 내년부터 풍력과 태양광을 통해 생산된 에너지로만 공장을 돌린다.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를 위해 현지 업체와 14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재생에너지 수급 계약을 체결했다. 3만 가구 이상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다.

LG화학이 RE100을 하는 이유는 ‘착한 기업’이어서만은 아니다. 우시공장에선 전기차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를 만든다. 완성차 업체와의 거래에서 RE100은 중요한 납품 조건이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가격이다. 중국의 재생에너지 가격은 석탄 등 화력발전보다 저렴하다. ‘착한 전기’로 불리는 재생에너지가 가격까지 싸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AEA)가 중국의 재생에너지 원별 발전단가(LCOE·달러/MWh)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태양광 가격이 화력은 물론 원전보다 낮다. 중국뿐만이 아니다. 인도 역시 태양광이 가장 싸다. 유럽은 해상풍력이 가장 저렴하다. 재생에너지의 가격을 결정짓는 요인은 입지조건, 즉 자연환경이다. 한국과 비슷한 일본의 해상풍력 발전단가는 원전의 2배가 넘는다. 태양광은 중국의 3배다. 일본이 원전을 포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한국은 어떨까. 가장 저렴한 발전원은 원자력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을 보면 한국의 원전 LCOE는 53.3달러로 석탄발전(75.5달러)의 75%, 태양광(96.5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해상풍력은 160.98달러로 원자력의 3배에 달한다.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얘기다.

재생에너지의 발전량과 설비량의 괴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설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의 12.8%에서 16.1%로 증가했다. 정부의 보급 확대 정책으로 설비용량은 1년 새 29.9% 급증했다. 반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포인트 늘어난 6.8%에 그쳤다. 재생에너지의 실효 용량이 들쑥날쑥하다는 것이다. 정부 보조금이 없다면 한전이 구입하는 재생에너지 전력의 구입단가는 원전의 2배 이상이다.

대통령이 “탄소중립의 속도를 내겠다”고 선언할 때마다 기업인들 사이에선 “해외로 나가라는 얘긴가”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공수표를 남발하면 그뿐이지만 기업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글로벌 공급망의 탄소중립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수출길이 막힐 가능성이 있다”고 한 발언은 엄살이 아니다. 대한상의의 최근 조사를 보면 대기업의 42%는 ‘현실적으로 탄소중립은 어렵다’고 답했다. 기업인들도 “사용 에너지의 절반이 전기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탄소중립을 하느냐”고 반문한다. 유럽연합(EU)은 배터리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유럽보다 20% 많다는 근거를 들이대며 배터리 공급망의 탈(脫)아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탄소중립보다 시급한 게 에너지 정책의 공론화”라고 말했다. 정부의 에너지로드맵이 무엇인지, 값싼 신재생에너지는 실제 가능한지, 핵연료봉 재활용 기술까지 실용화 단계인 마당에 원전은 정말 안 되는 건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했다. 세계 1위 소형원전 기술력을 갖고도 왜 썩히고 있는지 끝장토론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탄소규제가 국가의 제조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기다. 신재생 전원이 풍부한 곳으로 공급망이 이동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쏟아지고 있다. 탄소발생이 수출장벽이 되면 기업들은 저임금이 아닌, 값싼 에너지를 좇아서 해외로 공장을 옮겨야 할 판이다.

“부재하고, 불투명하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고 백서가 나온다면 “‘5년짜리 정부’가 국가 미래를 좌우할 에너지 문제를 정치화한 게 가장 큰 실책”이라는 평가가 나올지 모른다.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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