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폭락, 금융위원장 탓?…그날 국회에선 무슨 일이 [이호기의 금융형통]

입력 2021-04-24 08:59   수정 2021-04-24 09:01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졸지에 20~30대 청년층의 공적(公敵)이 됐습니다. 은 위원장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암호화폐 열풍에 대해 묻는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암호화폐 투기는) 잘못된 길"이라며 "어른들이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얘기해줘야 한다"고 짐짓 훈계성(?) 발언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는 내재적 가치가 없는 자산"이라며 "국내에 200개가 넘는 암호화폐 거래소도 현재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곳이 한 곳도 없기 때문에 9월이면 모두 폐쇄될 수 있다"고 엄포까지 놨지요.

은 위원장 발언의 후폭풍은 예상보다 컸습니다. 주요 언론들이 앞다퉈 대서특필했고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들이 일제히 급락해 23일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게 됐지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은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한 블록체인 전문 매체는 은 위원장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를 NTF(대체불가능토큰·Non Fungible Tokens)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 코인은 무려 270만원에 팔려 세간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은 위원장의 무지(?)와 안일한 인식을 규탄하며 십자포화를 퍼부었지요. 지금 은 위원장의 우군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금융당국의 수장에 오른 은 위원장이 왜 이런 지경까지 몰렸을까요. 그날 국회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은 위원장이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할 만큼 대역죄(?)를 저지른 걸까요.

사실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는 비교적 평온했습니다. 'LH 직원 투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방지법이 별다른 이견 없이 8년만에 통과됐으며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약 40여건의 법안들도 향후 심사를 위해 일괄 상정을 마쳤습니다.

그러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당초 안건에도 없던 암호화폐 열풍에 대해 불쑥 은 위원장에게 질의하면서 이번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지요.

강 의원은 "암호화폐 차익이 내년부터 과세되는데 정작 투자자들은 보호망 밖에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은 위원장은 이를 '그림 거래' 비유로 맞받아칩니다. 즉 그림도 개인이 서로 사고 팔면 차익에 대해 세금을 내는데 그림 가격이 떨어진다고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것처럼 암호화폐 과세도 마찬가지라는 논리였지요.

그런데 바로 이 그림 거래 비유가 결국 화근이 됐습니다. 이 비유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림이랑 비교하는 건 말이 안된다. 1대1 매매와 불특정 다수가 거래소에서 경쟁 매매하는 게 어떻게 같냐. 위원장의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둥 날선 발언으로 은 위원장을 거세게 몰아붙였습니다.
여당 의원의 날선 질의에 흥분한 은성수 금융위원장
은 위원장도 바로 이 대목에서 자존심이 꽤 상했던 듯합니다. 김 의원이 "어디 한번 답변해보라"고 하자 은 위원장은 다소 높아진 언성으로 논란이 된 발언들을 쏟아냈지요. "잘못된 길로 가면 잘못된 길로 간다고 어른들이 분명히 이야기해줘야 한다. 9월이면 200개가 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모두 폐쇄될 수도 있다"는 등 다소 과격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지요.

장관급 고위공직자인 은 위원장이 국회의원, 그것도 같은 여당 의원의 공격적인 질의에 흥분해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논란을 빚은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부동산 급등으로 내집마련의 꿈을 상실한 청년들이 대박을 좇아 코인 시장에 몰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꼰대'처럼 가르치려 드는 듯한 은 위원장의 태도가 분명 이들의 강한 반감을 불렀을 것입니다.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도 적절치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물론 200여개에 달하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가운데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한 업체가 적지 않지만 전체 코인 거래의 9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거래소는 이미 제도권 금융회사의 실명 계좌가 연결돼 있어 실제 폐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시장 급락은 단기 급등 부담, 미국 세금인상 등이 복합 작용
은 위원장의 발언이 분명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에 적잖은 영향을 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23일 '암호화폐 블랙프라이데이'는 오롯이 은 위원장의 탓이라기보다 단기간 높아진 밸류에이션과 미국의 자본이득세율 인상 추진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어차피 암호화폐를 제도권 금융으로 흡수하느냐의 문제는 우리 금융당국보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기축화폐를 쥔 선진국들의 정책 의지에 더욱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질책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을 은 위원장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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