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수교 120년 벨기에

입력 2021-04-25 19:02   수정 2021-04-26 00:49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모델로 삼은 국가가 중립국 벨기에였다. 당시 벨기에는 프랑스 독일 등 열강 틈바구니에서 영세 중립국 전략으로 주권을 지키고 있었다. 고종은 1901년 벨기에와 조약을 맺고 이듬해 각국 대사들 앞에서 중립국 승인을 받으려 했으나 콜레라 창궐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5년에는 일제의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 외교권이 박탈돼 벨기에와의 관계가 끊겼다. 벨기에는 1차 대전 때 독일에 점령돼 중립국 지위를 잃었다. 그런데도 한국이 어려울 때마다 도왔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 가장 먼저 이를 승인했고, 6·25 전쟁에는 3000명 이상을 파병해 함께 싸웠다.

한국명 ‘지정환’인 디디에 테스테븐 신부는 전북 임실에 국내 첫 치즈 생산시설을 세웠다. 외환위기 때는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한국에 투자조사단을 파견했다. 벨기에의 첫 해외 진출 대학도 인천 송도에 있는 겐트대 캠퍼스다.

양국 기업 간 협력도 탄탄하다.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시공에 삼성물산과 베식스그룹이 동참했다. SK건설과 LG화학, 벨기에 기업들의 상호 투자도 늘고 있다. 2017년에 아스트리드 공주에 이어 2019년 필립 국왕이 대규모 경제사절단과 함께 방한했다.

벨기에는 인구 1100만여 명, 경상도 크기이지만 영국에 이어 두 번째 산업혁명을 이룬 강소국이다. 자동차 의약품 등 첨단기술에 초콜릿, 와플, 맥주 맛까지 뛰어나다. 오드리 헵번과 장 클로드 반담의 영화 나라, ‘땡땡의 모험’과 ‘스머프’의 만화 강국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한때 ‘유럽의 전쟁터’가 됐지만 이를 유럽연합과 나토를 통한 외교력 강화 계기로 삼았다. 그 속에서 독창적인 문화와 음식으로 세계인의 감각을 일깨웠다.

올해 수교 120주년 기념 축제가 1년 내내 펼쳐진다. 벨기에에서 한국 만화·웹툰 특별전(7~12월)과 한국 클래식 향연(9~10월), 서울에서 벨기에 재즈의 밤(11월) 등이 열린다. 한남동의 벨기에 대사관에는 하회탈을 쓴 사람들이 떡볶이와 와플 앞에서 맥주로 건배하는 모습의 10m짜리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런 노력이 주한대사 부인의 옷가게 폭행사건 탓에 빛이 바랬다. 고개 숙여 사과한 피터 레스쿠이에 대사가 백석의 시 구절 ‘뚜물같이 흐린 날 동풍이 설렌다’를 줄줄 외는 한국문학 팬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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