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싶어도 기회조차 없는 청년들의 삶

입력 2021-04-28 17:17   수정 2021-04-29 00:28


‘거절체(拒絶體)’. 건강 상태나 작업 환경이 좋지 않아 보험 가입이 거절되는 이들을 칭하는 보험업계의 용어다. 친절한 미소, 두둑한 사은품과 함께 보험 가입을 권유받는 대부분의 ‘건강체’와 달리 이들에게 보험 가입은 이룰 수 없는 목표다. 만약 우리 사회에도 ‘거절체’들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소설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은행나무)의 작가 허남훈은 “청년들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거절체 인생”이라고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의 코로나19 사태에 이르기까지 대략 10년 단위로 반복되는 경제위기 때마다 가장 깊은 늪에 빠져드는 건 아직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던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금융위기 여파가 한국을 집어삼키던 2008년을 무대로 두 명의 주인공 수영과 용수, 이들 주변의 여러 거절체 인생의 삶을 점과 선으로 삼아 한 폭의 사회적 초상화를 그려낸다.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 출신인 주인공 수영은 매일 반복적으로 의미 없는 기사만 쏟아내는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사표를 던진다. 그런 그가 찾은 일자리는 보험사 영업직원. 국제공인재무설계사(CEP) 자격증을 얻기 위해선 금융회사 근무 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스스로에게 둘러댄 이유였지만, 그 역시 나이 서른에 변변한 경력 하나 없는 자신을 당장 받아줄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또 다른 주인공 용수는 대학 졸업 후 6년째 9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지만 연달아 낙방하고 결국 여자 친구와도 헤어진 뒤 ‘숙식 노가다’(공사 현장 인근에 숙소를 제공받으며 일하는 인부)로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학창 시절 뛰어난 운동 실력과 글쓰기 실력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그런 재능은 사회에 나왔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과 상황 묘사, 대사들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작가의 상상력 덕분만은 아니다. 신문 기자 출신으로 회사를 그만둔 뒤 한때 보험사 영업직으로 근무했고, 이후 식당과 온라인 쇼핑몰을 직접 운영했던 작가의 경험과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들이 소설 안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허 작가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엔 과거에 일을 하거나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크든 작든 담겨 있다”며 “개인의 내면 심리 묘사보다는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청춘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지만 작가는 주인공들을 억지로 끌어안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나갈 뿐이다. 보험 영업을 위해 시장 상인들에게 자신이 뛰쳐나온 신문사의 신문을 하루에도 몇백 부씩 돌리게 된 주인공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삶에서 어설픈 위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허 작가는 코로나19 사태의 위기감이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해 3월 자신이 운영하던 매장에서 먹고 자며 소설을 완성했다. 2021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품을 퇴고를 거쳐 책으로 출간했다. 그는 “금융위기 당시 청춘들이 고군분투했던 단면을 영원히 소설로 남기고 싶었다”며 “그 시절의 모습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겪는 오늘날의 청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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