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EU 따라 AI 규제할까 겁난다

입력 2021-04-28 17:26   수정 2021-05-03 08:57

‘투명성’에도 적정 수준이란 게 있을 것이다. 규제당국이 모든 걸 낱낱이 까발리라는 식으로 강제하면 부작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신용정보법 개정에 따라 개인신용평가회사와 금융기관은 SNS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 신용정보주체에 대한 자동화 평가가 가능해졌다. 금융거래 실적이 미흡한 청년층 등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방적 허용은 아니었다. 자동화 평가에 대한 신용정보주체의 설명 및 이의 제기 등의 조항이 들어갔다. 유럽연합(EU)의 데이터보호규정(GDPR)에 따른 법제화다.

최근 EU는 알고리즘 자체의 공개와 감사를 강제하려는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과 EU 간 통상분쟁 가능성이 제기된다. 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공개와 감사로 훈련된 모델이 다 드러나면 그다음엔 자동화 평가 분류 대상자들의 전략적 행동이 개시될 것이다. 전략적 행동을 지원하는 비즈니스가 횡행할 가능성도 높다. 그럴수록 모델 설명력은 떨어질 테고, 데이터 확보와 인공지능(AI) 모델 투자 유인도 약해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다시 옛날 체계로 돌아가면 그게 투명성을 통해 기대한 ‘공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AI를 활용한 채용의 차별·편향 우려도 그렇다. 밝히기 쉽지 않고 잘못돼도 쉬쉬해온 ‘사람에 의한 편향·차별’은 부지기수다. 청년층이 AI 채용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인한 오류는 개선해나가면 된다. 경제학자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상황에서 편향이 전혀 없는 최고 모델이 있는 게 아니라 최선의 모델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라면 맞는 얘기일 것이다.

EU가 AI법안을 내놨다. 법학자들의 분석이 나오겠지만, 강도 높은 규제가 포함됐다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위험성에 비례한 접근법이라며 ‘금지 AI’ ‘엄격한 사전평가를 거쳐야 하는 고(高)위험 AI’ ‘제한적인 투명성 의무화가 붙는 AI’가 제시됐다. ‘금지 AI’는 그렇다 치자. ‘고위험 AI’가 상당히 광범위하다. 제한된 투명성 의무화에 해당하는 AI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임을 알 수 있게 하라는 조건이 달린 챗봇 정도다. 허접한 수준의 AI 챗봇을 제외한 도전적인 AI는 죄다 규제 대상이란 선언으로 들린다. 규제 샌드박스와 스타트업 지원으로 AI 혁신을 촉진하겠다지만, EU가 역내 AI 경쟁력 키우기를 포기하고 역외 경쟁자 견제하기를 선택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브뤼셀 관료주의의 진면목은 ‘브렉시트’가 일어난 또 하나의 이유를 설명해준다. 자유주의 사상으로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영국이 규제 만능주의로 가는 EU에 있다간 AI발(發) 4차 산업혁명에서 낙오할지 모른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하노버메세 2021’에서 AI를 활용한 미래 제조업의 꿈을 펼친 독일도 속내가 복잡할 것이다.

EU의 AI 규제법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영향은 EU에서의 사업이나 투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EU가 무슨 법제화 움직임만 보이면 추종하는 세력이 국내에 있다는 게 더 걱정이다. 그나마 국회를 통과해 다행이란 ‘데이터 3법’을 불안정한 반쪽짜리 법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EU의 GDPR을 숭배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이다. AI챗봇 이루다 사태가 터지자마자 원점으로 되돌려 데이터 규제를 강화하자는 것도, 윤리·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강력한 AI규제법을 제정하자는 것도 이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은 한국과 달리 미국 기업에 마땅히 대항할 플랫폼 사업자가 없는 EU 플랫폼 규제법의 복사판이다. EU가 로봇을 ‘전자인(electronic person)’으로 검토하자는 보고서를 내면 바로 ‘AI의 법인격 정립’이 범정부 법제 로드맵에 등장한다. EU에서 로봇(AI)에 세금을 매기자는 얘기가 나오면 맞장구치는 것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코로나 백신 수급 논란과 관련해 뒤늦게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게 어디 백신뿐이겠나.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분쟁은 AI 패권 전쟁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역내 시장을 무기로 혁신보다 법제화 장사나 하려는 EU에 대한 환상 따위는 빨리 버릴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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