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80년대식 사고에 갇힌 '동일인 지정'

입력 2021-04-28 17:50   수정 2021-04-29 00:11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과 관련된 논란이 뜨겁다. 동일인은 흔히 언론에서 ‘총수’라고 지칭하는 기업집단의 최대주주를 일컫는다. 공정거래법 2조는 동일인을 회사와 회사가 아닌 경우로 구분하고 있다. 동일인이라는 용어가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와 같이 규정하고 있으니 명확하지 않다.

우리의 기업지배구조는 1990년대 말 이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선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기업 경영의 의사결정과정이 법제화를 통해서 제도권으로 들어왔고, 이사회 중심 경영과 감사·감사위원회의 모니터링이 정착하게 됐다. 물론 아직은 만족스럽지 않고,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기업집단의 총수가 전횡을 일삼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지난해 공정위가 기업집단으로 지정한 64개 기업 중, 총수가 10개 이상 기업에 등기를 한 경우는 두 개 기업이 있다. 물론, 총수가 등기를 하지 않고 기업 내 어떤 직도 맡지 않는,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기업도 있으며 이 두 기업처럼 최대주주가 책임 경영을 하는 기업도 있다. 총수가 등기이사를 하면서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기업, 이사회 의장만 맡는 기업, CEO와 의장을 동시에 맡는 기업, 등기는 하지만 CEO나 의장은 맡지 않는 기업 등 여러 형태가 있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기업지배구조를 찾아 가는 것이다.

물론 기업 경영에는 최대주주가 경영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공정위가 태동하던 1981년이나 동일인의 개념이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1980년대 중반에 비하면 최대주주가 이사회를 뛰어넘어 경영활동을 하는 경영행태는 많이 변해 가고 있다. 법적 책임과 소송의 위험을 안고 있는 등기이사들이 최대주주가 희망하지만 일반 주주가 원하지 않는 부의 안건에 대해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이라는 제도는 제도권에서 우리가 인정하는 대표이사, 이사회, 감사위원회 및 주주총회 등의 기업지배구조·의사결정 구도와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개인 지배구조를 정부 기관이 인정하는 것이다. 기업의 적법한 지배구조가 기업을 지배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초법적인(?) 총수가 사실적으로 기업을 지배한다는 현실을 정부 기관이 인정하는 것이다.

일부 기업에서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서 사내이사를 배제하는 등, 제도적으로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대안이 강구되고 있다. 이와 같이 독립성을 지키려는 방어막이 지속적으로 도입되는데도 최대주주가 독단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하려 하고, 공정위가 이를 인정해 동일인을 지정하는 제도를 유지한다면 우리나라의 지배구조는 제도상의 지배와 사실상의 지배로, 영원히 이중적으로 병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해외의 투자자들에게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나라 기업에는 시스템상의 지배구조가 있고 그 배후에는 실세가 있다고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공정위의 고충도 이해할 수 있다. 기업 집단이 중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누가 주도권을 갖는지를 명백히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이런 식으로 경영활동이 수행돼서는 안 되는데, 이런 행태를 정부기관이 인정하겠다는 것 아닌가. 삼성그룹은 임직원 수가 50만 명이고 자산은 400조원이 넘는다. 한 동일인이 이 거대한 기업군을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방향타 역할은 할 수 있고, 주요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는 있어도 다수의 의사결정을 한 개인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경영도 동일하다. 의사결정은 적절한 위임·전결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모든 공무원이 해당 부처의 의사결정을 수행하지 않고 청와대만 쳐다본다고 하면 이는 가당치 않다. 우리는 언제까지 시스템을 무시하고 자연인인 한 사람을 중심축에 두고 볼 것인가. 공정위는 동일인과 관련해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하며, 풀기 어려운 숙제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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