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왕서방'의 아파트 쇼핑

입력 2021-04-28 17:50   수정 2021-04-29 00:20

부산 해운대의 한 아파트(전용면적 84.93㎡)가 지난달 17억원에 거래됐다. 석 달 전 같은 아파트 실거래가(7억5600만원)보다 9억4000여만원이나 비쌌다. 두 배 큰 주택형보다도 높았다. 이 구매자는 중국인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유학 목적으로 입국한 30대 중국인이 아파트 8채를 싹쓸이했다.

최근 비트코인을 활용한 환치기(불법 외환 송금) 수법으로 4억5000만원을 들여와 11억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한 중국인이 적발됐다. 그는 중국 조직을 통해 11차례 암호화폐를 불법 송금 받았다. 이런 방법을 동원했다가 당국에 적발된 중국인이 34명이나 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외국인이 사들인 아파트 2만3167채의 58.6%인 1만3573채를 중국인이 구입했다. 이들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샀다. 구입 금액으로는 서울, 취득 건수로는 경기도가 가장 많다.

중국인 소유 토지도 필지(토지 등록단위) 기준으로 2016년 2만4035건에서 지난해 상반기 5만4112건으로 125.1%(3만77건) 급증했다. 신도시 개발 수요가 몰리는 경기도의 경우 6179건에서 1만7380건으로 181.3% 증가했다. 제주도에선 전체 외국인 보유 필지 1만5431건 중 73%인 1만1267건이 중국인 소유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 자금 조달이 용이한 외국인의 투기성 거래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국인이 자국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아파트를 살 때는 대출 규제를 받지 않는다. 가족 명의로 사면 다주택 여부도 알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은 이를 과세 차별로 막고 있다. 중국인 유입으로 집값이 급등한 홍콩은 외국인의 취득세율을 30%로 올렸다. 호주는 시드니 주택의 25%를 중국인이 사들인 것에 놀라 신축 주택 구입자의 인지세 할증료를 8%로 두 배 올리고 양도소득세 규정을 강화했다. 뉴질랜드와 싱가포르도 중국인의 부동산 쇼핑 방지법을 마련했다.

우리나라에선 내국인이 ‘규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부동산 투기 제한 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중국은 한국인의 부동산 취득을 금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각종 규제로 국민 손발이 묶인 틈을 타 중국인들이 부동산을 ‘줍줍’하는 판이다. 우리 땅에서 중국 집주인에게 월세 내고 사는 사람도 갈수록 늘고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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