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경제 세계사] 해리 포터와 연금술, 미신일까 과학일까?

입력 2021-05-03 09:00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1997년 출간된 이후 20년간 세계 67개의 언어로 총 4억5000만 부가 팔렸다. 시리즈물 사상 세계 최대의 베스트셀러다. 등장인물이나 에피소드, 상황 설정 등은 단순히 작가가 공상해서 만든 게 아니다. 영국에서 내려오는 전설, 북유럽 신화와 고대·중세의 연금술, 고딕소설, 모험담 등이 작품에 두루 녹아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이해하려면 연금술을 빼놓을 수 없다. 1편 부제인 ‘현자의 돌(마법사의 돌)’은 연금술의 상징과도 같기 때문이다. 현자의 돌이란 용어는 4세기에 그리스 테베의 조시모스가 처음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대체 연금술은 무엇이고 현자의 돌은 또 뭘까?

연금술은 근대과학이 정립되기 이전 단계의 과학과 철학적 시도를 총칭하는 것이다. BC 2000년께 고대 이집트에서 불과 금속을 다룬 ‘불의 사제’가 그 유래다. 이들의 솜씨는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같은 화려한 이집트 장식물에서 보듯 수준이 대단히 높았다. 이집트의 연금술은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로 전파되었다. 고대 연금술사들은 기술의 신인 이집트의 토트와 그리스의 헤르메스를 숭배했다. 연금술은 6세기 동로마제국을 거쳐 8세기 이슬람권에 전해졌다. 이슬람의 오랜 지배를 받은 스페인과 시칠리아, 십자군원정 등을 통해 연금술은 중세 유럽에도 전파됐다.

연금술은 특히 아랍에서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우마이야 왕조 때 이슬람권 최초의 연금술사로 꼽히는 칼리드 왕자는 연금술 연구를 위해 왕위조차 거부했을 만큼 아랍은 연금술에 관심이 많았다. 연금술은 화금석, 즉 현자의 돌을 찾는 과정이었다. 명칭은 돌이지만 실제로 돌은 아니고 가상의 물질, 물질화된 정신, 연금술의 전체 과정이 응축된 기술의 산물로 간주됐다. 즉 자신은 변치 않으면서 다른 물질을 변환시키는 화학적 촉매를 가리켰다. 연금술의 상징이 자신을 태우면서 영속하는 존재인 불사조다. 《해리 포터》에도 불사조가 등장한다.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을 약속하는 자들”
연금술사는 흔히 철, 납 등 값싼 금속을 금으로 바꾸려는 기이한 사람들로 알려졌다. 금에 대한 인류의 집착을 대변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미신이나 마술에 가깝지만, 근대과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연금술사는 폭넓고 깊이 있는 지식의 탐구자였다.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사회의 계몽이었다. 연금술사에게 세상이 대우주라면 인간은 소우주였다. 인간이 곧 신이고, 광물도 자체의 생명이 있으며 창조의 비밀을 성찰하면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연금술사는 우주의 운행, 생로병사의 근원에 대한 지적인 힘, 인간 육체의 불멸 가능성, 느낄 수 없지만 거역할 수 없는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 등을 신봉했다.

중국, 인도 등 동양에서도 독자적으로 연금술을 연구했다. 동양의 연금술은 병을 고치고, 늙지 않고, 식물을 생장시키는 만능 치료제이자 생명수와 신비의 명약을 찾는 데 주력했다. 진시황의 불로초로 만든 불로신단도 연금술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연금술은 점차 비밀스러운 기술로 변질됐다. 특히 가톨릭 수도사들이 연금술에 빠져들자 교황 요한 22세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을 약속하는 자들”이라며 모조 금 제조와 판매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으로 비잔티움의 학자들이 대거 유럽으로 유입되자 연금술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15세기에 유럽은 각국의 궁정마다 연금술사, 천문학자 등을 유숙시키며 연구에 몰두하게 했다.
황금에 대한 집착과 권력
금은 교환가치는 높아도 사용가치는 거의 없다. 프랑스 물리학자 겸 화학자 에티엔 조프루아는 황금을 “빈곤을 해결할 가장 강력한 해독제라는 점만 빼면 물리학에서 가장 쓸모없는 금속”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인류는 수시로 황금에 눈이 멀었다. 연금술사들이 후대로 갈수록 금을 만드는 데 집착했듯이 금은 역사상 무수한 신화와 전설, 사건을 만들어냈다. 귀하디 귀한 금은 동서양에서 공히 권력 그 자체였다. 파라오는 황금의 힘에 의존했고, 중국 황제를 나타내는 색은 황금색이다. 불상도 완전함의 상징으로 금박을 입혔다.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에서는 사람들이 황금으로 귀중품이 아닌 화장실 변기를 만들었다고 기술한다.

인류는 왜 이토록 금에 집착했을까? 그 이유는 금이 지닌 영속성에 있다. 로마시대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황금은 불에 타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금속”이라고 했다. 실제로 금은 시간이 흘러도 땅에 묻혀 있어도 물에 잠겨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 금의 영속성과 완전성에 비유해 황금시대, 황금분할, 황금률 등 이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가 생겨났다. 세계 최초의 화폐도 BC 7세기 리디아왕국(지금의 터키)에서 만든 금화였다.

황금이 절대 권력과 직결된 사례로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가 있다. 황금으로 만든 절대 반지를 끼는 사람은 권력을 갖고 자기 몸을 순간 이동할 수도 있다. 이 절대 반지 이야기는 중세 독일의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와 매우 흡사하다. 이렇듯 황금으로 만든 절대반지는 권력이면서 동시에 탐욕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동서양과 시공을 초월해 황금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황금 때문에 전쟁, 신대륙 탐험, 골드러시, 식민지 건설, 원주민 학살 등 무수한 사건이 일어났다.

17~18세기의 유럽 절대왕정 시대에는 국가의 부를 왕실의 금 보유량으로 여긴 중상주의가 성했다. 19~20세기 초 통화제도였던 금본위제도 역시 변치 않는 금을 통해 화폐가치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인류에게 금은 여전히 변치 않는 부이자, 권력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연금술이 금을 만들지 못했지만 플라스크 도가니 등 기구와 증류 침전법 등 기술을 개발해 근대화학의 시초가 되었다는 견해는 어느 정도 타당할까.

② 이론적으로 82개인 납(Pb)의 양성자 가운데 3개를 제거하면 금(Au· 양성자 79개)으로 변환시킬 수 있고 실제로 1980년 입자가속기를 통해 소량이지만 납에서 금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는데,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③ 비트코인 등 가상세계의 디지털 물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용가치는 거의 없지만 변하지 않는 금속인 황금이 앞으로도 안전자산으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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