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 서둘러야

입력 2021-05-02 17:31   수정 2021-05-03 00:03

“잘 가라 스트레스, 반갑다 연금아!”

연금 선진국인 미국이나 호주 근로자가 은퇴 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일찍부터 국민이 퇴직연금만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기에 충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정비를 서두른 덕택이다.

그러나 한국은 고령화 속도 세계 1위, 저출산 속도 세계 1위, 노후 빈곤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상황에서도,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란 국격에 맞지 않게 초라한 퇴직연금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 제도는 국정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해야 하는 국민의 ‘노후 안전망’이자 ‘사회 안전망’이다.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 보장을 위해 제정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시행된 지 15년 흘렀다. 그동안 우리 퇴직연금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해 가입률이 50%를 넘었고 적립금은 250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 취지대로 근로자 노후 소득 보장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이다. 퇴직연금 가입·운용·수령 등 각각의 생애 단계에서 제도가 가입자 요구와 현실 개선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제도의 생애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운용 단계의 문제다. 연금자산 장기 수익률이 높아야 가입과 수령 단계의 문제점도 해결될 수 있다.

회사가 책임지고 정해진 퇴직금을 지급하는 확정급여형(DB)은 그나마 나은데, 근로자의 운용 결과대로 수령하는 확정기여형(DC)의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임금상승률(4%) 이상의 수익률을 올려야 DB보다 유리한데, 지금처럼 80% 이상을 연 1% 금리도 안 되는 원리금보장 상품에 계속 넣어두면 퇴직금 수령액이 과거 퇴직금 제도보다 못한 결과가 돼 버린다.

DC제도는 근로자가 알아서 자산운용을 잘하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금융역량이 부족한 근로자가 20~30년 자산운용을 직접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DC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한 디폴트옵션 제도가 연금 선진국에서 탄생한 배경이다. 초장기 자산운용에 적합한 상품을 정부 당국의 심사와 관리를 통해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 디폴트옵션이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살펴보면 선진 사례를 총망라해 효율적으로 설계한 점이 눈에 띈다. 디폴트옵션 상품에 자산 배분 상품부터 안정형 상품까지 다양한 유형을 담았고, 외국과는 달리 근로자의 투자 성향에 따라 디폴트옵션 상품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전 세계에서 투자자의 선택권을 가장 강하게 보장했다.

최근 디폴트옵션 상품에 원리금보장 상품을 포함해야 한다는 업권 간 논쟁으로 국회 통과가 지연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디폴트옵션은 장기 투자를 전제로, 관리 가능한 일정 수준의 실적배당 위험자산 편입을 통해 합리적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하자는 추가 옵션 개념이다. 원리금보장 상품을 디폴트옵션 상품에 또다시 넣자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 원리금보장 상품을 편입시켜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실패 경우로 회자되고 있는 일본 사례를 굳이 반복할 이유가 없다.

성공적인 디폴트옵션의 안착을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디폴트옵션 시행과 더불어 취약 근로자 보호 수준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개선해야 한다. 둘째, 적격 연금상품에 대한 심사와 선정이 엄격히 이뤄져야 하고 운용 현황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위험관리가 필요하다. 셋째, 교육을 통해 근로자의 퇴직연금제도 및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한국과 선진국 근로자의 DC 불입액은 비슷한데 제도가 달라 퇴직금은 서너 배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금융업권은 업권의 이해관계를 떠나 근로자 이익을 우선하는 제도 도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퇴직연금에서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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